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Sep 01. 2024

포멀의 향기

영화 반지의 제왕 제2부, 두 개의 탑 마지막 장면에 가면 세오덴 왕이 본격적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 준비를 하는 장면이 있다. 기나긴 고민 끝에 목숨을 바쳐 헬름 협곡을 사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그 결의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철제 고리옷을 갖춰 입고 가죽 갑옷을 꽉 졸라매며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많은 경우에 정장을 보고 '전투복'이라고 부르는데, 마음 자세를 새롭게 한다는 뜻에서, 또는 그렇게 갖춰 입음으로써 자신감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일면 당연해 보인다. 007 영화에서 겉멋 든 듯 정장을 고집하는 제임스 본드도 사실은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 넥타이 색깔을 세심하게 고르는 여느 직장인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몸에 딱 달라붙는 뭔가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특히 그것이 옷인 경우에.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입었던 정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정장 옷감으로 된 옷이었는데, 어린이용 정장은 아동복 치고는 비쌌겠지만 내 기억에 그 두께는 아버지의 정장과 똑같았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그 재킷의 목깃은 너무나 뻣뻣해서 마치 동그란 플라스틱을 목에 두르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 뻣뻣한 옷감들이 교차되면서 만든 무늬는 피부를 따끔따끔하면서 동시에 가렵게 만들었다. 입지 않을 수 있으면 최대한 입지 않으려 했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준비한 음악회에서는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3학년이고 딱히 신동은 아니었기에 그저 짧은 동요 하나만 연주했을 뿐이지만 조명 때문에 땀이 나면서 재킷과 셔츠의 옷깃 부분이 목에 붙었던 불쾌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는 회사에서 작업복을 입을 때도 최대한 모양이 나게 입으려고 한다. 적당한 운동으로 인해 모양이 나게 입으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다. 출퇴근 때에도 정장은 아니지만 최대한 갑옷을 입는 세오덴 왕이나 아라곤을 떠올릴 만큼은 마음을 먹으면서 입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넥타이가 반드시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평소 정장을 입고 가지 않으니 넥타이 할 일은 별로 없지만, 전투복이라면 어디든 손가락에 온 힘을 집중해 꽉 당겨서 묶을 뭔가가 필요한 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 내면에서는 대중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충돌한다. 대중적인 것은 내가 말한 '전투복'이다. 마음을 다잡으면서 결의를 다지는 갑옷. 수만 명의 오크들을 쳐부수듯이 일을 해결해 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입는 갑옷은 몸에 닿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팽팽하게 당기듯 입는 정장이다. 그런 점에서는 평소에도 매 시간, 매초를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투자 공부를 하는데 심각하게 잠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만큼 출근하지 않는 동안 내내 정장을 입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기까지가 대중적인 것이고 이 지점까지 오면 개인적인 것이 은행 금고의 쇳덩어리 벽처럼 나를 가로막는다.  나는 몸에 붙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에는 웃통을 벗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럴 수 없다면 아예 냉수로 샤워를 해서 옷을 입더라도 한동안은 땀이 나지 않게 한다. 언젠가부터 반지와 팔찌 등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것들이 내 삶으로 들어오게 된 건 그것들이 정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일종의 약식 전투복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땀이 나서 셔츠가 몸에 달라붙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특히 목에서 피부에 붙는 느낌은 아직도 당혹스럽다는 표현 외에는 나타낼 방법이 없을 정도이다. 옛날 영화 같은 곳에서 정장을 입는 영상을 보면 목에 붕대 같은 것을 감고 셔츠를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장을 더 오래 입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천조각이 한 겹이 늘어나면 체온은 0.2도는 더 올라갈 것이고 그것은 다시 땀을 더 많이 내는 악순환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막상 해 보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건 실제로 시도해 볼 생각을 하더라도 겨울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땀이 목에서 마구 솟아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땀에 대한 피부의 거부감을 피해 갈 수 있다면 전투복을 갖춰 입듯 마음의 준비를 옷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문화에 가까우니 나 역시 특별할 건 없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더 있어 보이고, 더 포멀하고, 더 격식을 갖춘 듯한, 그리고 실제로 마음으로 예의를 다하고 있어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정장을 입을 것이다.  포멀은 예의가 아니다. 상대방이 그것을 보고 대접받는 느낌을 받거나 혹은 그 사람을 만나는 이 자리에 대한 판단을 더 고급스럽다고 바꿀 수는 있지만 그것이 순수한 목적이 아니다. 실제로 포멀한 정장의 목적은 제복의 목적과 같다. 경찰 제복의 목적은 경찰이 자신의 임무를 숙지하고 있다는 뜻이고, 남에게 내가 그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보증을 하는 것이다. 군복은 군인이 자신이 군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무기를 사용해서라도 군인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장을 입고 있는다고 해서 남이 내 임무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 때문에 정장을 입었는지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렇지만 정장을 입는 것은 내가 일정한 목적을 위해 이 옷을 갖춰 입고 여기 이 자리에 왔으며, 내가 정장을 입은 목적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임무를 받아들이듯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이자 자부심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배경으로 삼고 진지하게 일에 뛰어든다는 것은 옆에서 보아도 멋지지 않을 수 없지만 스스로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것을 향기라 부른다. 포멀, 목적을 위한 어느 정도의 행동의 희생에서 나는 멋진 향기.

매거진의 이전글 읽는 것과 쓰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