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걷고 있다. 손에 든 게 없어서 양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게들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은 요정이다. 아니, 요정이 아니라 하나의 유령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생겼다거나 얼마나 크다거나 하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있기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존재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다. 그 존재는 사람들의 삶에 딱 달라붙어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삶에는 좀처럼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관찰만 한다. 그렇지만 관찰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단어의 뜻처럼 행동이나 외양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존재는 행동뿐 아니라 그 동기와 의도, 심지어 감정까지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이니 신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존재는 사람과 같이 느낄 수 있고, 사람에게 똑같이 느끼게 할 수도 있는 정도에 그칠 뿐 신처럼 세상이나 사람을 창조했으리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사람은 아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손발과 눈, 코, 입, 귀 등 기관들을 되도록 온전히 사용하려고 하는 데만 해도 기나긴 시간이 걸린다. 팔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고 손가락을 정밀하게 움직이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손과 발까지 자유자재로(관절과 근육이 허락하는 한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그것들을 이용해서 능력의 한계를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 간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고, 곧 뛰어다닌다. 어떤 존재이든 능력은 쓰라고 주어진 것이고 그 능력을 쓰지 않는 것은 없다. 생존을 위해서도 사용해야겠지만 자기만족을 위해서, 예를 들어 햇볕 좋은 곳을 향해 게으르게 기어가서 그 자리에 배를 뒤집고 누워 있는 고양이처럼 그런 사소한 용도로도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뭔가를 위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위배될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니 굶어 죽는다거나 하는 결말이 오겠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아까 이야기한 그 존재는 사람들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것으로 하는 게 굉장히 소극적이다.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싸움을 말리지도 않는다. 감정을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되나 궁금해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흐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걸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것의 능력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그렇게 관찰한 것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담담하게 묘사하건, 뮤지컬을 보듯 격정적으로 펼쳐 보이든 모두 그 존재의 작품이다. 그 존재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런 스토리를 풀어놓기 시작하면 그 존재에게 머리를 빼앗긴 불쌍한 사람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광경을 글로 써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사람을 불쌍하다고 한 것은, 그 존재가 펼쳐놓는다고 해서 모두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훤히 드러내어 모두 같이 들을만한 험담을 만들어 준들, 그것을 말하는 솜씨가 없으면 그저 그런 글이 될 뿐이다. 똑같은 웃긴 얘기도 누가 들어도 하나도 웃기지 않게 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머리가 터질 듯 생생한 영감을 불어넣어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하게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생생하면 생생할수록 못쓰는 사람이라도 그럴듯한 글로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원래 글솜씨가 있다고 할 만한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제삼자가 아니라 바로 본인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못쓰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잦아서 그 심정 잘 안다.
그런 생각을 하다 결국 엠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공기의 냄새가 청량하다. 하늘도 맑고. 그러다 점점 하늘이 조각조각나면서 공기에도 따뜻한 빵냄새가 섞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내가 사무실에 거의 다 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안에서 다 들릴 듯한 울림이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고 유리문을 당겨서 열고 다시 나무문을 밀어서 열고 들어간다.
역시나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을 돌아보니 엠이 책을 읽고 있다. 신문이 아니라 책이다. 가끔 신문을 들고 있으면 영감을 받을 만한 이야기를 해 주고는 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들이 들을 때는 재미있는데 내가 그걸 재미있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마치 대략적인 소설의 줄거리를 끄적여 놓은 수첩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도 들을 때 재미있으면 된 거지, 싶어서 만족하고는 있지만, 이왕이면 글도 재미있게 나오면 오죽 좋으랴.
엠이 등지고 있는, 창가 바로 앞의 책상 한가운데에는 내 타자기가 있다. 검은색의 다소곳한 외관이다. 다소곳하다는 게, 무거워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그런 면뿐만 아니라, 외관도 전체적으로 그렇다. 철제 프레임이지만 플라스틱 코팅을 해 놓아서 보기에는 벨벳 느낌이 나지만 실제 만지면 그렇게까지 부드럽지는 않다. 그리고 양쪽으로 벨벳이 아닌, 실크처럼 보이는 두 줄이 나 있다. 스미스코로나 제품 중 1947년 모델인가가 그런 게 있는데, 아마 한글 타자기는 그런 게 없을 거다. 하지만 이곳의 내 타자기는 한글/영문 겸용이다. 아무리 상상 속의 타자기라고 해도 치는 건 힘들다. 타자기는 어쩔 수 없다. 지렛대로 힘껏 종이를 내려쳐야 하는 거니까.
나는 엠에게 걸어오면서 생각하던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시작은 그의 독서를 방해하는 것이다. 가끔 내가 들어올 때 쳐다본 적이 있는데, 부담스럽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런 경우는 엠이 먼저 할 이야기가 있는 경우인데, 그건 보통 내가 글을 쓰기 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던지는 질문일 때가 많아서 정말 엠이 가상의 존재라도 온라인 게임 속의 등장인물처럼 내가 컴퓨터에 접속하지 않았을 때에도 뭔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엠."
엠이 쳐다보지 않는다. 아니, 책갈피를 꽂는다. 천천히 허리를 편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긴, 할 말이 있어서 그렇지."
"보통은 한참 앉아 있다가 말을 하지 않나? 무슨 일이길래 오자마자 말을 꺼내는 건지 모르겠군. 심각한 일인가?"
"엠. 이 타자기에서 뭐가 보이나?"
"그 타자기? 종이가 보이는군. 자판도 보이고."
"혹시 요정 같은 건 보이지 않나?"
"뮤즈 같은 거 말인가?"
"맞아. 그런 거. 내 글을 돌봐주거나, 아니면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내 뇌를 돌봐주는 그런 거."
"내가 보기엔 그런 거 신경 쓰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네. 정 신경이 쓰이면 그런 존재에 대해서라도 글을 쓰게."
"그런가? 너무 단호한데."
"엘, 글은 써야 느는 거야.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고 쳐보게. 아니, 그런 존재가 바로 자네라고 생각해 보게. 자네가 그렇게 영감을 주고 감각을 되살려서 아름다운 글을 나오게 뭔가를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 말이야."
"그렇게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걸?"
"만약 자네가 그런 존재라면, 매일같이 '시간이 나면 글을 써 볼까?' 하는 사람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기 위해 영감을 불어넣어 주겠나, 아니면 항상 글을 붙들고 더 나은 글, 더 나은 글, 하면서 씨름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나?"
"알겠네. 글을 써야겠군."
"일단 많이 쓰게. 그리고 많이 고치게. 고칠 수 없다면, 다시 읽게.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이네."
"그래도, 내가 다른 데서는 이런 말을 못 해도 여기서라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이야기라니?"
"요정 말이야."
"요정은 없네."
"너무 단호하군."
"이 세계 이야기라면, 요정은 없네. 자네 세계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세계가 그렇다면 자네가 받아들이는 자네의 세계도 마찬가지겠지."
"요정이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뭔가? 그냥 당연하다고 말하지 말고 말이야."
"요정이 뭘 할 수 있지?"
"뭘 하다니? 영감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
"요정이 영감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머리에 바람을 불어넣는다거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요정이 훅, 하고 불면 머리에 뭔가가 떠오른다는 게?"
"그렇군."
"요정이 아니라 정령이네."
"그렇군... 뭐라고?"
"정령이란 말일세. 요정이 아니라."
"정령은 어떻게 영감을 주는데?"
"정령은 키보드에... 이를테면 손을 얹어놓고 있지. 그래서 자네가 글을 쓰려고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으면 그 손을 타고 자네의 머릿속으로 영감을 집어넣는다네. 일종의 흐름이지. 손에서 머리라는 그 방향이 아래에서 위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손은 영감이 머무르기에 높은 곳이야. 그러니까, 물이 높은 곳에 머무르기 힘들어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영감이 손에 머무르기 힘드니 머무르기 쉬운 머리로 흐르는 거야."
"너무 갑작스러운데? 영감을 주는 요정은 없지만 영감을 주는 정령은 있다고? 그럼 정령이 자판에 손을 올리고 있고, 내가 자판에 손을 올려서 그 아이디어를 이어받는다면, 정령은 저 종이 위에서 나를 쳐다보는 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정령이라고 하지 않았겠지. 요정도 팔다리 다 있지 않나. 그러나 다른 점은, 정령은 안개와 같다는 거야. 의지를 가지고 흘러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
"내가 사는 세상엔 컴퓨터가 있네."
"알고 있네. 노트북을 보통 사용하지. 화면과 얇은 자판이 있는 그런 물건."
"그럼 화면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니라는 거지?"
"아이디어라는 건 형체가 없지 않나. 그 형체가 없는 존재가 자네에게 핵심만 전해주기 위해 자판에 머물러 있네. 단지 자네의 손에 닿기 위해서. 그게 다네. 섬뜩하게 머리나 눈이 달려 있는 존재로 만들지 말게."
그렇단 말이지. 타자기 위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글이, 아니 글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이 흘러가는 것이 어느 정도는 그 정령이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생각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뮤즈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상황에서 글이 이상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이상한 아이디어가 들어와도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런 경험이 많아, 엠. 글을 어느 정도 쓰다 보면 저절로 써진다 싶을 정도로 생각을 마음대로 흘러가게 놔두곤 하지. 그런데 제대로 된 글이 나오는 일은 별로 없어."
"그건 핑계이네. 아마 욕심을 부려서 정령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게 아닐까? 아니면 자네가 너무 최선을 다하려고 따지고 든다거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칙칙 거릴 때는 스피커를 고치는 게 아니라 안테나를 손봐야 하는 것이네. 그 상황에서 스피커를 고치고 볼륨을 높여봐야 칙칙 거리는 소리도 함께 커질 뿐이야."
"엠, 이거 정말 내가 쓰는 글 맞나? 음... 정령도 그렇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안개 같은 그런 아이디어 덩어리가 의지를 가지고 돌아다닌다니. 이 타자기에도 있다는 말이지?"
나는 내 타자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이 타자기로는 글을 써도 읽을 수가 없으니 제대로 쳐본 적은 없다. 가끔 잠자리에 들어서 집중하다가 잠들고 싶을 때나 한 번씩 문장을 치는 상상을 해볼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령이 내려와 있다니.
"엘, 내가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게."
"비밀? 새로운 사실인가? 아니면 내가 깨닫지 못했던 이곳의 규칙인가?"
"새로운 사실이네."
"말해 보게. 알려 주게."
"지금 저 타자기에는 정령이 없네. 정령은 자네가 글을 쓰면 글을 쓰는 소리를 듣고 내려오기 시작하지. 솜사탕을 만드는 것과 같아. 가느다란 실 몇 가닥이 내려오는 것 같다가 자네와 공명하면서 점차 두꺼운 뭔가가 되어 가지. 그러다가 결국 옆에서 보면 타자기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는 거야."
"그렇군. 글을 써야 제대로 내려온다는 거군."
"그런데 그건 이제 말할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냥 공식 같은 것일 뿐이야. 진짜는 이거네."
"진짜라고? 그게 뭔가?"
"저 안개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니네."
"저 안개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그럼?"
"자네가 가지고 왔어. 자네 세계의 것이네. 자네 노트북에도, 자네 수첩에도 자네가 글을 쓰고 있으면 안개가 내려앉았을 거야. 자네가 여기서 못 보는 걸 보면 자네 세상에서도 당연히 보지 못했겠군. 그러나 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니지. 글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 스토리를 자네가, 굵직하게 느끼고 그 개연성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안개는 짙어지네. 자네의 손이 그 안갯속에 완전히 잠기게 되면 자네는 그 스토리에 오히려 휘둘리게 되지. 자네의 손이 보이는 정도가 자네가 글을 마음대로 끝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네. 자네가 그 안갸를 흩어서 글을 끝내는 경우는 둘 중 하나지. 자네가 자네가 쓰던 글에 대한 집중을 점차 풀어버리게 되거나 혹은 스토리가 정말 끝나가거나. 후자가 좋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전자이지 않을까 싶어."
"뮤즈라기엔 좀 시시하군. 나를 다독이고 그런 존재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존재 맞네. 단지 섬뜩한 눈 같은 게 없을 뿐이지. 그런데 그런 건 없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런 걸 보다가 눈이 마주치고 그러면 잠을 설치다가 글을 더 못 쓰게 될 것 같은데?"
"그것도 맞겠군. 그런데 내가 약간 실망스러운 건, 내가 글을 쓰면 모여든다는 점이네. 글을 쓰지 않으면 나를 독촉할 것 같은, 혹은 글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그런 존재가 있지 않을까 했거든."
"그런 건 한 번 만들어 보지 그러나? 한 번 구체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필요 없다고 깨달을 수 있을 텐데."
"그런가?"
"엘, 자네가 나를 잘 알듯이 나도 자네를 잘 알아. 자네는 옆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바가지를 긁으면 갑자기 어디서 새로운 양주라도 사가지고 올 사람이야. 글을 쓰지 말라는 사람이 있으면 글을 쓰겠지.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쓰지만. 그렇지만 누가 글을 쓰라고 지켜보고 서 있으면 책만 잔뜩 읽고 유튜브만 매일같이 들여다볼 사람이네. 내가 잘 알지."
"그것도 맞네."
"그렇지만 다독인다는 점에서는 그 존재에도 해당이 되네. 자네가 아무리 글을 쓰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은 자네에게 남아 있으니 말이야.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점점 굵어진다고 말했지? 보통은 그렇지 않네. 그 정도 쓴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아. 오래 앉아서 글을 써야지, 하고 앉아 있더라도 손이 안갯속에 저절로 잠기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단 말일세. 일단 가느다란 실이라도 닿아있어야 그것이 씨앗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들으니 고맙네. 내가 나에게 하는 <용기를 주는 말> 같군. 나는 자네고 자네는 나니까."
"그거네. 게다가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우리 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 말은 뭔가 심오하군."
"이제 나는 책을 읽어야겠네. 혹시 자네, 여기선 뭔가 보일지 모르니 뭔가 좀 쳐보게. 아니면 이 대화만 해도 자네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손을 담갔을 수도 있으니 그만 써도 되겠군."
"안 그래도 손가락이 아프니 오늘은 이만 해야겠어."
"그럼 타자기나 좀 치다 가게. 난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이 책 다 읽을 때까지 나가지 않을 작정이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와서 책상에 앉았다.
"안개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