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벽공기와 담배

2025.1.1.,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by 루펠 Rup L

오랜만에 맡는 도시의 새벽공기이다. 몬테네그로는 식당 등에서는 흡연구역을 허용하기 때문에 호텔 로비에서도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나는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층 로비에 식당이 붙어 있는 경우인데, 이것도 힐튼 호텔에서는 달랐던 것으로 보아 힐튼 호텔은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했나 싶었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유독 다른 호텔에 비해 향초 냄새가 심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그것조차 담배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전 일곱 시 공항 체크인, 아홉 시 이륙.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여섯 시 반에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의 공기는 아직 차들이 다니기 전이라 매우 맑았다. 차갑고 맑은 공기. 택시에서 내려서도 한국의 지방 버스 터미널과 비슷한, 위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항 건물과 친근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공항 안에 들어오니 공항 안에서도 내내 흐릿하게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만 실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담배 냄새가 난 것은 활주로 게이트 에어리어이자 면세점 바로 앞이었으니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그 말은 곧 그 냄새의 출처가 공항 직원들의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정말로 담배를 좋아하는 나라다.
몬테네그로에 머무는 동안 담배 피우는 모습이 좋아 보였던 경우도 있었다. 깔끔하게 마치 비싼 시가를 피우듯이 여유롭게 뒤로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그랬다. 물론 여유 있는 생활을 하니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었겠지만 흔히 '한 모금만 빤다'라고 지칭하는 그런 천박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담뱃재도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있으니 손가락으로 튕기지 않고 부드럽게 털었고. 연기를 품은 숨을 내쉬는 모습도 시가를 피우듯 한가로워 보였다는 말이 다른 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침을 뱉는 사람이 없었다.
어제저녁 파스타와 몇 가지 요기를 하러 호텔 1층에 딸린 식당에 갔는데, 실제 담배를 피우는 곳은 건물의 실내는 아니고 테라스 공간뿐이었다. 테이블마다 재떨이도 그곳에만 있었다. 그러나 테라스의 모든 접이식 유리문을 닫고 식당의 현관문은 열어 놓은 상태여서 식당 안에서 피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외출을 했다가 들어오는 중에 요기를 하러 식당에 간 것이기 때문에 테라스를 통해 담배 피우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서 지나왔다. 그때 회색 체크무늬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파이프를 물고 신문의 십자말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 번씩 파이프를 물고 연기를 작게 내뿜으며 신문지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을 정도였다. 흑백의 신문과 검정과 하양밖에 있을 수 없는 십자말풀이 코너와 양복의 회색 체크무늬 때문에 그 모습 자체로 옛날 흑백사진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가 아닌 티와 우유 세트가 있었지만 우리가 음식 주문을 하고 돌아보았을 때에는 테이블의 티세트가 사라졌고 우리 테이블에 음식과 함께 주문했던 차와 맥주가 나왔을 때는 이미 그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바닥에 버리지도 않았다. 대체 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는 건 어디서 온 습관인지 모르겠다. 여기도 담배는 아무 데서나 다 팔고 식당뿐 아니라 구석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차이라고는 재떨이가 많은가 적은가 뿐인데 우리나라는 밖에 재떨이가 있는 곳도 없는 것도 하나같이 바닥에 꽁초와 침을 뱉은 흔적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커피 생각을 하듯 문제를 풀면서 담배를 피우던 그 할아버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평화이다.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은 모험이다. 날마다 하나씩 그날의 풍경을 뽑는다면 어제의 사진은 무조건 그 할아버지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가 좋다.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