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문제3

by 루펠 Rup L

가리키는 것이 있으면서 동시에 묘사하는 것이 있었던 중세 그림들과, 가리키는 것도 품고 있는 것도 없는 현대의 추상화. 뭔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 내가 요즘 몰두했던 것은 이것들과 글의 관계였다. 관계라기보다 대비였다. 뭔가에 대한 생각을 따라가면서 어떻게 문장의 형태로 풀어지는지 쫓아가면서 적는 것이 재미있어서 글을 쓰던 나였는데, 그림을 보라. 생각의 흐름 자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시간과 대상은 필요가 없어진다. 글에 스타일이 있듯이 내가 글을 쓰면서 생각을 흘러가게 하는 데에도 일정한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만을 따라가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글을 쓸 때처럼 시작하는 문장, 시작하기 위한 일정한 생각이 필요 없다. 그저 <무엇>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진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글을 쓰는 것과 동일한 형태가 될 것이고 그것은 내 글의 뼈대가 될 것이다. 어떤 글도 그 그림에 대입하면 결론이 어떻게 될지 한순간에 다 보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내 글들이 하나의 연산이라고 하면, 거기서 주제 즉 상수들이 빠지고 뭐든 될 수 있는 것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은 방정식이 된다. 게다가 변수도 주제 하나뿐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볼까 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림이 쉬워 보인다거나, 그림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본다거나 하는, 광고에서 미사여구로 내세우는 그런 것들은 거리가 멀다. 어쩌면 내 글의 구조가 단순하다는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은 그림을 그려 보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내 글도 그림을 그리기 전과 후가 제법 다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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