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화살표

by 루펠 Rup L

인생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한 순간도 남김없이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지나 있고 정신을 차린다 해도 흐름을 막는 건 고사하고 단지 흐름을 감각할 수 있을 뿐이다.
무언가에 대해 관념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인생을 통해 시간 속을 흘러가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만난다는 뜻이다. 만나지 않고서 관념이 생길 수는 없다. 우리의 신체조차도 갓 태어나 처음 만나 적응하는 과정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만나서 계속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 자신이 변해가는 것 같으면서도 늘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일부는 내 착각일 뿐이고 일부는 정의 같은 단어처럼 그 자체로 관념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관념을 내면에서 마치 사본을 보관하듯이 쌓아두고 그것들을 사용해서 내가 지향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방향 자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관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특정 관념을 향한 미련일 수도 있고, 내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주인공에게 걷게 하는 허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관념이라는 사실이다. 관념들이 모여 <내가 아는 사실들>을 이루고 이야기를 만들며, 감상의 길을 마련한다.
어떤 작품이든 감상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관념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감상하는 척이 된다. 소설을 읽고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이 말투 거슬린다", "주인공의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ㅇㅇ 읽어 봤다." 같은 이야기만 하거나, 미술 작품을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제작 방식이나 모양에만 집중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그런 분석을 해 주는 직업은 따로 있다. 분석을 하는 직업이 아니라 분석을 '해 주는' 직업이라고 한 이유는, 개개인이 그런 작업을 하느라 감상에 방해를 받는 것을 방지하고 최대한 배경 설명으로써 그런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내면화하면서 만든 관념들을 조립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스스로 이제까지 살면서 쌓아 올린 관념들을 사용해서 그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하지 않는다면 조립에 들인 작가의 노력을 무시하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레고로 실물 크기의 어떤 물건을 만들면, 그 물건과의 유사성, 기능 상 모양의 재현성 등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블록이 많아서 힘들었을 것이다", "그 노력이 대단하다"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작품을 만든 사람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방향, 화살표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 이것들은 인생의 흐름, 동떨어진 외로움, 도착지 등을 관념화하는 과정에 반드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모든 순간들이 각기 다른 분야의 목표들을 향해 쉼 없이 다가가는 과정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일 학년 생 한 명은 수능을 향한,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미래의 내 모습을 향한, 학급의 일원으로서의 올해 말을 향한, 학원에서의 올해 말을 향한, 인생에서 알지 못하는 미래의 돈벌이를 향한 수많은 화살표를 동시에 지고 있는 존재이다. 어두운 가운데 하나의 화살표가 빛을 발하고, 그 방향을 향해 인생을 바치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화살표가 보인다. 심지어 우리 인생은 디지털이 아니라서 그 화살표들이 서로 모호하게 붙어 있을 때도 있다. 제대로 파악하려면 작품을 감상할 때만큼이나 관념들을 세세히 구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까이 대 보며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을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면 때로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대부분 기억이 변조되는 형태로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 관념을 시각적으로와 청각적으로, 그러니까 그림과 글로만 표현한다고 해도 답답함의 극히 일부가 될 뿐이다. 방법을 몰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만큼, 할 말과 그릴 그림은 어딘가에 또 다른 관념의 형태로 쌓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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