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한 향수는 지나온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첫사랑에 빠졌을 때의 내가 자주 가던 곳의 풍경, 학창 시절 좋은 일이 있어 외식을 하러 갔던 경양식집 등. 그러나 향수는 반드시 경험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들이 합쳐져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다. 환상. 짝사랑하는 이성에 대해서도 실제와 다른 모습을 혼자서 상상하고 환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거대한 시대에 대해 그런 것이 없을 수는 없다.
벨 에포크. 그 한 시기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환상이 자리 잡는가. 산업혁명의 결과로 환경오염이 도시를 덮치고 그로 인해 시야가 흐릿해져서 인상파의 화려한 자연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에 충격을 받을 만큼 사실과 다른 모습으로 그 시기를 기억, 아니 상상한 것이다.
얼마 전 <첨밀밀>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그 당시의 한국인들이 동경하던 홍콩과 미국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지금 그런 모습의 동네가 있다면 어느 시골의 읍사무소 소재지인가 싶을 테지만 당시의 모습이기에 여전히 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그건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차라리 과거의 추억에 잠길 때처럼 그렇게 아련한 느낌을 즐기고 싶은 것에 가깝다. 추억의 노래가 최신 가요였던 시절, 더 이상 쓰지 않고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기계들이 유행과 편의의 상징이었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 워크맨을 처음 구입했었다. 소니 이십 주년 기념 모델이라고 바디가 스테인리스로 된 무거운 제품이었다. 테이프를 넣고 찰칵 소리를 내며 닫은 후 주황 형광으로 된 액정이 달려 있는 리모컨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잠시 후 노래가 나왔다. 리모컨 액정 구석에 있는 배터리 마크가 깜빡이거나 한 칸밖에 남지 않을 때는 일본에서 직수입한 것이어서 110V 변압기에 충전기를 꽂고 그 위에 워크맨을 단자에 맞추어 세워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미리 충전해 놓은 네모난 '껌'전지만 바꾸어 끼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껌전지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동전 등에 의해 방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각 플라스틱 케이스가 있었다.
그러나 첨밀밀은 그보다 십여 년이나 더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고 배경 역시 그렇다. 자동차의 모양부터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내가 살아보지 못한 배경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그것이 일상이었던 이상한 세상에 대한 '상상'이다.
첨밀밀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느낌에 약간 서글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는데 그 느낌이 무엇인지 대략 알게 된 것은 지난 주말 <화양연화>를 보면서였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끝까지 보지 못했다. 공간을 채우는 긴장감 때문에. 그러나 그 '향수' 때문에 지금까지 본 중간 부분까지만이라도 종종 보게 될 것 같다. 매우 좁고 각종 종이들이 (역시 매우 좁은) 책상 위에 쌓여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사무실. 발이 편한 것과 관계없이 사방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거리, 공식적인 문서를 만들기 위해 수시로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는 손놀림 등. 지금의 눈으로 볼 때 불편함도 그때는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것이었는데, 미래에서 현재를 돌아보면 그렇게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일까? 예전에 레이저프린터 토너의 원리로, 그러나 종이에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이처럼 얇은 섬유질이 되어 책을 만드는 사회에 대한 짧은 단편을 쓴 적이 있다. 수만 년이 지나도 보존되는 책을 만드는 사회에서 십 년만 지나도 노랗게 변색되는 종이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토요일에 본 화양연화 때문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도 이상하다 했다. 이 모든 생각들은 오늘 오전에 지하철에서 본, 갤럭시 버즈 케이스 때문이다. 요즘은 갤럭시 버즈도 그렇고 에어팟도 그렇고 케이스가 남들과 똑같고 딱히 표시할 방법도 없어서 추가로 케이스의 케이스를 씌우고는 하는데, 그 모양들이 재기 발랄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 본 광고는 90년대 삐삐 모양이었다. 광고를 막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단지 액정 부분을 진짜처럼 컬러 처리를 절묘하게 잘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삐삐를 사용하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삐삐에 찍는 숫자를 의미를 담아서 8282처럼 암호처럼 보내는 방법이 마치 비법인 양 신문 기사로도 퍼지기도 했고(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피씨통신으로 유명해져서 기사로 퍼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서함이 나오면서부터는 삐삐를 들고 공중전화에 줄 서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전화 기능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더 좋아했다. 단지 삐삐 사서함의 대체품이지만 말로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자 메시지는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쓰는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휴대폰으로 통신사를 통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돈폭탄이라는 것은 당시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와이파이도 아이폰 3Gs가 수입되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 시대를 집어넣은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그 때문에 보고 싶을까. 화양연화와 첨밀밀이 그 시대가 들어 있어서 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한국이었다면, 내가 지금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그 때문에 보고 싶었을까. 말 그대로 사실보다 내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할 공간이 더 많기 때문에, 환상에 가깝기 때문에 동경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가 비현실적일수록 인기가 높아지듯이 나 역시 실제로 그곳에서 살았다면 어땠을지 피부로 와닿는 어려움들을 무시하고 상상할 수 있기에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문화상품은 그저 문화상품에 불과한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