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문제2

by 루펠 Rup L

그래서 보통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글을 시작할 수 있는 생각과 그 생각에서 나온 첫 문장이 있으면 곧바로 글을 시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소녀가 있었다."라는 문장처럼 소설도 아닌데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은 좀처럼 없기는 하지만, 혹시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가 생겼는데 글을 쓸 수가 없다면 그런 방법이라도 쓸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글에는 무엇보다 생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생각이 흘러가는, 생각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생각이 있어야 글을 시작하고, 글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고요하게 정해져 있으면 글이 진행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내가 끌고 간다면 결국은 독자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읽기 싫은 글이 될 뿐이다. 생각이 흐른다는 것은 생각을 하는 주체(와 그 경험들)와 생각을 하는 대상이 있고 그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변한다는 뜻이다.
최근 글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여기 이 지점에서 고민이 있어서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글은커녕 수첩을 펼 여유도 없었다. 지하철에서도 생각에 잠겨 있었고 책도 읽다 보면 눈운동만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글을 쓰는 데에는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고, 그 생각이 흘러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보면 <어떤 것>을 그릴 때도 있지만, 단지 느낌뿐일 때도 있다. 스토리도 없고 단지 눈의 즐거움, 감각의 자극에만 몰두한 것이다.
중세의 그림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묘사하는 솜씨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성경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을 주는 목적, 천국을 향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주제는 성경 안에 있지만 그림이 가리키는 것은 그림 속의 장면이 아닌, 모두의 상상 속에만 있는 천국이다. 지옥을 그린 그림조차 천국을 바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 천국을 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안의 인물이나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적이 되면 될수록 천국보다 그림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 그림의 내부를 가리키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사실적인 그림은 사진의 탄생과 더불어 의미가 꺾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윤슬이나 꽃잎이 흩날리는 그림을 보면 명상도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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