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문제1

by 루펠 Rup L

늘 강조하듯이, 내게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계기는 생각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의 움직임, 흐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이 흐르는 것 자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생각을 살펴보는 내 기준의 변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기를 예로 들자면, 풍차가 도는 것을 공기의 격렬한 흐름인 바람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풍차의 규모를 줄여 바람개비로 만들면,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내가 위치를 바꾸면, 즉 움직이게 되면 공기는 가만히 있더라도 바람이 부는 것과 똑같은 효과로 바람개비를 돌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글을 쓰는 것은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면서 받아 적는, 일종의 의식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계속 사건의 흐름을 등장인물들에게 맡긴다는 소설가들은 아마 이해할지 모르겠다. 내 글쓰기는 그 길로 가는 초입이든 나란히 난 길이든 어쨌든 유사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을 새롭게 기록하는 일도 없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시작할 때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전이되어 새로운 글을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번에 이삼천 자에 불과한 글을 쓰면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산만할 수 있냐고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 개의 글에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게 하지는 않으니, 그런 흐름을 끊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에만 의미를 둔다면 아마도 만 자 정도는 가뿐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즐기기는 하지만, 그 생각이 어떤 종류인지에는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다.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좋기 때문에 글쓰기나 필기구 같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조차 인과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 어떤 주제가 되었든 생각에 잠기면 결국 어떤 생각으로든 이어지게 되어 있고 나는 단순히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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