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소리 징검다리

by 루펠 Rup L

나는 지금 조용한 방 안에 있다. 이것을 조용하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의미 있는 소리가 아무것도 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오늘은 날이 무척 습해서 조금만 걸어도, 심지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셨을 뿐인데도 땀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제습기를 틀었다. 그러나 장마 때만큼은 습하지 않아서인지 아직까지는 제습기에서 물통을 비우라는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제습기의 팬소리가 지금 집안에서는 가장 큰 소리다. 처음에는 조금 크다고 생각했으나 곧 온 집안의 배경이 되었고 이제는 냉장고 소리와 비슷하게, 야외에서 글을 썼다면 파도소리나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같은 것으로 들린다고 말할 수 있다. 카페에서 들리는 의미 있는, 음악소리나 때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와는 다른 그저 배경일뿐이다. 컴퓨터에서도 팬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제습기 소리가 너무나 커서 잘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모닥불 소리가 들린다. 제습기 소리만 아니었어도 온 집안을 덮었을 유일한 소리다운 소리인데, 컴퓨터로 모닥불 ASMR 영상을 틀어 놓았기 때문이다.
정전이 되면 이 모든 소리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타자 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모두 전기로 만들어진 소리이다. 도시에서는 집안이 완벽하게 조용해진 밤이면 오토바이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짧게라도 경적을 울리면 건물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파동의 소리, 누군가 창문을 열고 노래를 부르는 소리 등이 들린다.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모든 전자제품이 없는 밤도 나쁘지 않다. 내 타자소리가 유일한 적막한 밤이면 더 좋다. 그 때문에 호텔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닫은 얇은 유리창을 통해 파도소리만 들리는 페라스트의 호텔방도 무척이나 좋았다.
적막한 방은 글을 쓰기도 좋지만 글을 쓰기 좋다기보다 생각을 하기 좋은 공간이다. 결국 글 쓰기 좋은 것도 같은 단어의 뜻이 내포하고 있는 뜻에만 간신히 스치듯 지나가던, 그 단어가 수많은 정보 속의 일부에 불과한 일상보다 단어 하나, 생각의 싹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그에 걸맞은 두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니까.
한동안 의지에 대한 소설을 쓰다가 멈추었다. 우주의 의지가 물리 법칙을 만들어내고, 그 물리법칙은 우주 자체를 유지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의지가 스며들어 자체적인 작은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이 생명이고 그 생명이 스스로의 의지를 깨달을 만큼 지능이 높아져 스스로 그러한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사회요 국가라는 내용이었다. 의지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사회로 넘어가지 못하고 생명에서 끊겨 버렸다. 갑자기 멈추게 된 이유를 찾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이 전부다. 적막한 공간을 찾지 못한 것.
사실 적막을 찾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간단히 스펀지로 된 3M 귀마개만 해도 충분히 조용한 공간은 만들어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기억 때문에 귀마개를 하면 뭔가 외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꺼려질 뿐이다. 그래서 그냥 이어폰을 꽂거나 밖이 지나치게 시끄럽지 않을 때는 그냥 컴퓨터에 연결된 텔레비전으로 ASMR 등을 틀어 놓는다. 공부할 때는 노래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음악은 운동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외에는 잘 듣지 않게 된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야외에서 모닥불을 보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난로의 장작이 타는 모습은 겨울마다 보아 왔다. 장작은 난로의 뚜껑을 닫아 놓으면 보이지 않는다. 가끔 나무를 더 넣기 위해 뚜껑을 열면 사나운 불길이 안에서 이글거리다 새로운 산소를 맞이하며 화악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퍼에 불이 옮겨 붙는 상상이 들어서 시선을 돌리곤 했다. 반면 모닥불은 온기만 간신히 느낄 수 있는 먼 거리에서 보았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지금은 불멍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때는 단지 그냥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멍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딱히 불멍이라고 부를 정도로 멍하게 있을지는 모르겠다. 잠시 쳐다보다가 타닥타닥 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쯤 수첩을 꺼내지 않을까.
뭔가를 내뱉어야 해서 써야 하는 때가 있다. 응어리가 아니라 징검다리 같은 어떤 것이다. 어떤 덩어리가 마음속에 있어서 그것을 털어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게 아니라 내 생각이 흘러가는데 그 생각을 갈라놓는 징검다리 같은 돌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그것들을 돌이 아니게 풀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치우는 것이 아니다. 징검다리가 그 위에 나뭇가지들이 쌓여 물의 흐름을 막게 될지도 모른다면, 더 깊은 곳으로 빠뜨리면 그만이다. 굳이 가지고 물밖으로 나오거나 모래가 되도록 깨버릴 필요까지는 없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것들을 더 많은 생각의 흐름에 잠겨 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도 내가 하는 생각이니 결국은 내가 생각에 잠겨야만 가능하다. 나는 생각에 잠기기 위해 생각을 따라가며 받아쓴다. 이제 제습기는, 습도는 어느 정도 잡힌 것 같으니 꺼야겠다. 호숫가의 물결소리를 들어보아야겠다. 그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타자 치는 소리도 이만 그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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