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려고 하지만 마음먹은 것들이 으레 그렇듯 글을 쓰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상상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글을 쓰던 글판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늘의 뜻과 우주의 뜻에 대한 생각과 그 뜻과 생명의 뜻,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도 생명인지라 그 모든 것을 이어받은 인간 사회의 방향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는 내용을 쓰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철학책은 아닌지라 최대한 모호하게 풀어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의 뜻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들고 다니던 글판이 가방에서 빠져나오고, 그 글판이 없는 채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하더라도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내 가방 속에는 항상 조그마한 로지텍 키보드가 하나 들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수첩을 펴고 차분히 적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면 핸드폰에 메모를 하는데, 예전에는 구글 메모장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스레드에 툭툭 던지듯 써 보는 편이다. 그러나 핸드폰에 하는 메모도 길어지면 키보드를 꺼내어 구글 메모장에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스레드를 사용하면 글자 길이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 제한에 도달하면 메모장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만 스토리가 있는 글은 손으로 쓰는 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똑같은 스토리로 도전을 했지만 파일을 열어 앞부분을 읽으면 도저히 연결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글이 그냥 이렇게 끝나 버려도 조금 못 쓴 글일 뿐 미완성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반면 손글씨는 누가 봐도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어서 쓸 수 있는 것 같다. 손글씨는 마치 글자가 자라는 밭과 같아서 내가 계속해서 밭을 갈아가며 씨를 뿌려서 밭을 늘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중에 내 손글씨를 내가 알아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지만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앞부분의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글을 이어서 시작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거실 책상 옆 책꽂이에 글판을 꽂아 두었다. 사실 잠시 쉬려고 하기는 했지만 일주일 정도 고민하면 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잠시 책상 위에 두었던 것인데 봄을 맞이해서인가 책상 정리를 하면서 임시로 책꽂이에 꽂아두고는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 책상에 앉으면 '아, 글판 챙겨야지.'하고 생각을 하고 그대로 책을 읽는다. 글판을 보자마자 글을 이어서 썼다면 이렇게 오래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판은 별 건 없다. 화판이나 결재판처럼 단단한 판에 종이를 끼울 수 있게 되어 있고 그곳에 노란색 리갈패드를 꽂아 둔 것이 끝이다. 글판에는 표지와 지퍼가 있기 때문에 뚜껑을 닫은 양쪽으로 깎은 연필과 휴대용 연필깎이를 함께 넣고 지퍼를 잠가 두었다. 글을 쓰고 나면 그대로 정리만 하고 지퍼를 닫는다. 다음번 글을 쓸 때, 지퍼를 열고 글을 쓸 준비를 하면서 새롭게 연필을 돌려서 깎으면서 머릿속으로 예열을 한다.
스타워즈 중 만달로리안을 재미있게 보았지만 스케일 때문에 다른 시리즈로는 좀처럼 넘어가지 못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은 서부영화에서처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역할이라 그렇다 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는 장면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장면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때문에 전체적인 재미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뉴스를 읽고 잡지를 보는 장면도 나오는데, 태블릿으로 책을 읽는 장면은 나오면 안 되나 싶다. 그러고 보면 속보 같은 뉴스도 잘 나오지 않고 1:1 통신만 나오니 시리즈 특성상 그냥 연출하고 싶은 것만 연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커다란 태블릿으로 책을 읽는 장면도 나올 만 한데 말이다. 메일을 쓰는 대신 화상으로 메시지를 녹화해서 보내는 시대를 상상했겠지만 그 정도의 기술 문명이라면 기술의 축적만큼이나 모든 지식도 고르게 축적되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듄'에서 주인공이 책으로 공부하는 장면은 신선할 것이 없는데도 신선했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활동이다.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필요가 없다. 글을 해석하고 그 글이 만들어 놓은 틀을 내 머릿속으로 다시 세우는 것은 도면을 보고 건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악보만 보고 온 머릿속을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 것, 그 자체로 읽는 것의 의미는 충분하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상상할 수 있도록 뼈대만이라도 다시 구현해 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것의 의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