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꺼내 들고 십분 정도 읽는 책이 있는데 오늘 보니 가름줄 시작 부분이 많이 닳은 것이 눈에 띄었다. 잠시 이 끈이 끊어지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갈피도 많고 반드시 읽던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읽는 책도 아니었으니까. 중학교 때 자주 읽던 백과사전의 가름줄이 닳아서 끊어졌던 기억이 났다. 끊어졌다고 표현은 했지만 완전히 닳아서였기에 솜을 뗄 때와 같은 느낌으로 줄의 나머지 부분이 떨어져 나온 것에 가까웠다. 책꽂이에서 꺼낼 때 가름줄을 당겨서 뺐던 것이 아마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기 힘들거나 글을 쓰기 힘들 때는 그 책을 읽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탁탁, 두 번 두드리는 것조차 시작하기 힘들 만큼 올해의 무더위는 잔혹했다. 차에서 내리면 지하 주차장인데도 불구하고 라디에이터 아래에 있는 것처럼 어깨에 닿는 열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한낮에는 여름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는데도 그러는 데에는 장사가 없었다. 옛날에는 잠들기 힘들 만큼의 열기만 밤에 남아 있어도 열대야라며 뉴스에 나오곤 했는데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기온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없어서 다루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요즘은 내가 뉴스를 보지 않으니 나왔어도 몰랐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집에 들어오면 곧바로 에어컨을 틀고 에어컨 바람에 머리를 내민다. 체온이 모두 머리로 몰리는 건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점점 게을러지기만 하는 느낌이다. 아니, 이건 게으른 것과는 약간 다르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이 게으름이라면, 지금 경우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는 것이니까. 머리가 식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샤워이다. 냉수 샤워를 하고 나서도 몇 초 간 냉수로 머리의 열을 식히고 나면 그제야 할 일들이 생각난다. 식사도 그제야 생각이 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더위에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배고프다는 것과 식사 사이에 연결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가 앞으로의 여름 중에서는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말에도 주중에 틈틈이 수첩에 적어 놓은 것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들을 읽는다. 배수아의 에세이를 읽는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에세이인 듯 시인 듯 소설인 듯한 글들을 읽는다.
한때는 니체에 빠져서 횔덜린의 시나 비트겐슈타인의 글만 읽던 시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내려준 결론은, 그것들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초인의 개념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초인이기에 존경할 것인가? 초인이기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것인가? 하지만 초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초인이 과연 우리들의 운명을 도맡아주는 것이 과연 우리의 믿음만큼 가능한가? 초인은 초인으로의 본질 그대로 살다 죽는 것이 초인의 삶이다. 그렇게 삶을 돌이켜 보면 초인다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초인이니 나를 따르시오."라는 사람들, 우리의 관심을 구걸하는 사람들 중에는 초인이 있을 수 없다. 정치인은 초인을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초인일 수는 없다. 초인이면서 다수를 만족시키려는 발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인이 다수를 만족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건 직무유기다.
오히려 지금은 나의 시선, 내 발걸음, 나의 한 문장 하나하나에 상념을 일으키는 글을 읽는다. 목적지에 가는 버스를 번호를 보고 탄다고 해서 시력이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눈앞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시력이 좋은 것이다. 아니, 눈이 먼 정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초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큰 글자를 잘 보는 것이 실생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시력 운운할 때는 작은 글자를 기준으로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내게는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그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있을 수밖에. 나는 그분이 하는 말보다 내 생활의 루틴이 더 중요하다. 저녁 즈음에 집을 나서면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까 싶어 주인들이 낮에는 데리고 나오지 않던 강아지들이 꼿꼿이 세운 꼬리를 흔들면서 곳곳을 탐색해 가고 낮에는 햇빛 때문이 오히려 보기 힘든 나시티를 입은 근육질의 남녀들도 보인다. 강아지(는 물론이고) 주인들, 근육질의 남자들, 탄탄한 몸매의 여자들 모두 내가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 볼 상대가 아닌데, 그 이유는 위버멘시에게 내가 가지 않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다. 남이어서. 나는 이러한 가벼운 일상이 좋다. 히어로물에서 입버릇처럼 말하는, 일반인들의 '일상'을 지킨다는 말, 그 한 마디면 나는 히어로들을 위한 예산에 적극 찬성할 것이다.
가을이 되면, 더 이상 집안에서 에어컨과 제습기를 틀어 놓아야 할 필요가 없어져서 산책이 가능해지면 보다 건설적인 생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설적인 게 뭔지 또 물어보아야 한다. 난 스스로도 건설적이라고 감탄할 만한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늘 끄적거릴 수 있게 된 것이 나 스스로에게는 최선으로 건설적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한숨을 쉰다. 낮에는 습기를 머물고 있음에도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세차게 불던 바람이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음에도 전혀 불지 않는다. 창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늦여름이라 살짝 기대는 했지만 오늘도 역시 어긋났다. 오늘도 창문을 닫고 제습기를 틀어야 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