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는데,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닿지 않고 내 가슴에만 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단지 혼자만의 몸짓일 뿐 물리적으로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잊지도 못하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사무친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 옵니다. 혹여 가느다란 끈조차 끊어져 버리지 않을까 함부로 연락을 해 보지도 못합니다. 이건 짝사랑만의 증상이 아닙니다. 마음이 통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게 통한 것인지 용기가 없어서 확인해 보지 못한, 사랑의 초기에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확인해 보려다 상대방을 의심한 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 원망해 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우선이 되어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 것은, 그것이 자발적인 활동이라면 칭찬할 만합니다. 그런 적이 없는 사람들은 남들의 행동에 대해 쉽게도 '이타적이다'라며 비꼴 수 있습니다. 그런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간은 더 믿음직스러워지겠지요. 자발적이지 않은 활동이라면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일 테니 논외로 해야겠습니다.
시간을 멈추고,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을 예리한 칼로 잘라내어 한 순간의 단면을 본다고 합시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송곳처럼 정수리를 뚫고 나가고, 가슴을 터질 듯하게 만들 때, 그 모습은 어떻게 보이게 될까요?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것,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의 무력감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무력하지 않은데 스스로 무력하게 행동해야 하는 불균형에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거겠지요.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행동하는 규범과 습관이 있습니다. 여기에 반해서 행동을 해야 하게 되면 그것이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데 연락하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그 시간도 일반적인 스트레스처럼 그렇게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요? 왜냐하면 사랑이라고만 하면 무조건 고결하고, 아름답고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포장을 하지만, 스토커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으로 보아 아름답게 보이는 일정한 각도나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특정한 상태의 조건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조건이 되지 않으면 다른 스트레스와 똑같이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사병은 스토커의 소극적인 표현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스토킹을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랑은, 하나의 목표가 되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 대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갈라서기가 필요해집니다. 이성적인 사랑과 감정적인 사랑을 구분해야 하지요. 이성적인 사랑이 어떤 쪽이고 감정적인 사랑은 또 어느 쪽인지 모릅니다. 어느 쪽이 더 해로운지도 모릅니다. 단지 제가 저렇게 표현한 것은 단지 양쪽으로 대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성과 감정 정도로 갈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나는 소유욕이 발현한 성질의, '내 안의 우리'를 향해 있을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연결욕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발현한 성질의 '우리 안의 나'가 되고 싶은 욕망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지나치면 해로운 것이겠지요. 상대방만 위하더라도 지나치면 싱대방을 지치게 만들 수 있고 나를 조금 더 위한다 하더라도 상대방과 결만 맞는다면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혼자 있을 때, 감정이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사무치게' 느껴질 때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 있어도 고독하다,는 말은 그런 상태가 극도로 억제된 상태일 겁니다. 그것 역시 습관적이든 고의로 노력을 해서이든 사랑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겠지요. 감정을 피하려는 건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감정이 발현되는 것은, 그 시점에 잘 관찰해 보면 엄밀히 말해 과정에 논리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논리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논리로 뛰어 넘어가는 순간들 말이지요. '나를 보고 웃었는데 나를 좋아하는 걸까?'라는 생각 같은 것이 논리적으로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볼 것이 많아집니다. 사랑이든 분노든 힘든 건 제게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저 자신이 생소해 보일 때도 있고요. 그리고 관찰하려고 하면 직전까지도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던 그 부분이 딱딱한 껍데기로 둘러싸여 감정적으로 달라붙던 부분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뀐다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아, 이 부분은 분노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관찰은 불가능합니다. 계속해서 불길에 휩싸여 있는 데다 관찰을 하겠다면서 생각을 자꾸 해 보았자 나에게 그 감정을 일으킨 그 상황만 계속 머릿속에 반복 재생이 되니까요.
어디선가 감정은 단지 화학 성분들의 파티에 불과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이런 감정들을 호흡 중에 나오는 성분들을 가지고 분석해서 일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ㅇㅇㅇㅇㅇ 성분이 45% 이상이지만 60%는 되지 않고 ㅁㅁ성분이 검출이 되었으니까 고독감을 느끼는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AI가 좋아할 아이디어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