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하루였습니다. 훗날, 오늘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도 이 문장만 보면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봄날, 수많은 그렇고 그런 날 중에 하나였으니까요. 따뜻해서 봄이 지나고 금방 여름이 올 것 같았지만 비가 내리면서 순식간에 기온이 내려갔고, 분명히 아침에는 반팔 반, 긴팔 반이었던 사람들이 퇴근할 때는 모두 뭔가를 한 겹 더 걸치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반팔로 출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반팔로 퇴근하는 사람은 없었나 봅니다.
가을에 그렇듯이 비가 내리면서 한 번쯤 기온이 내려가는 것은 봄에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신경 쓸 일이 많아서인지 퇴근길은 너무 새롭고 싱그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공원처럼 조성해 놓은 길이 있습니다. 겨우 며칠 전에 거기서 이팝나무의 향기를 맡으면서 '정말 향이 강하다'며 기분이 좋았었는데 오늘은 비가 내린 후여서라기에는 흔적도 없이 꽃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신 찬 공기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불었고, 그런 상태에서 나무를 쳐다보자 원래 그런 꽃 따위는 피는 계절이 아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물냄새 때문에 싱싱하다는 느낌이 있다는 건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가까운 상태라는 힌트를 주는 것 같았지요.
오늘따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빗물이 고인 곳이 많은 데다 흙길도 모두 젖어 있으니, 물론 견주들 자신이 추운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산책을 하고 나면 옷을 빨고 강아지를 목욕시켜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부담이었을까요?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저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신나게 두리번거리며 걷는 푸들과 함께 지나가는 견주 한 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 이상 한 마리도 더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공원은 원래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열몇 마리씩 보면서 지나가던 곳입니다. 지난주까지는 공기가 매우 따뜻했습니다. 나무들은 기분 탓인지 몰라도 환해 보였습니다. 강아지들은 뛰기도 하고 서로 냄새를 맡기도 하고 빙글딩글 돌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강아지가 그 공원에는 한 마리도 없었고, 공기도 차가워서 압축하면 얼어 버릴 것 같았으며 나무들도 가로등 불빛을 막아서 그늘을 만들었지만 마치 그들 자신도 그늘의 일부인 양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며칠 사이에 극명한 대비가 되는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저는 어땠을까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의 저와 오늘의 저도 참 많이 다릅니다. 며칠 전의 저는 이렇게까지 신이 나서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뭔가를 쓰기는 했지만 그동안 해 오던 것을 계속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날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쓴다는 일이 저 자신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일종의 자가 치유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이 그토록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기온이 차가웠다는 이유도 있지만 제 내면이 달라진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아닐 거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정말 추웠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아니어서 반팔로 생각 없이 돌아다닐 만은 했지요. 그러니까, 예전보다 예민해진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본 것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한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에는 비는 내리지만 그렇게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침이 밝았고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좀 힘든 건 연휴 뒤의 출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밤에 잠을 설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결국 아침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 건 맞군요. 그게 뭐였을까요. 제 안이었을까요, 제 밖이었을까요.
어쨌거나 으슬으슬한 날씨가 되니 뜨끈하고 느끼한 피자가 먹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뜨끈한 국물이라는 것은 봄비보다는 겨울에 눈이 온 후에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장마철에는 어묵국에 히레사케도 꽤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맥주와 피자를 먹고 싶네요. 이런, 저녁을 먹어서 배가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