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쯤 전인가, 한 가지 꿈을 열흘이 넘도록 이어서 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십 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에 하룻밤 사이에 한 사람의 일생을 꿈으로 꾸었던, 시간 압축과 약간 반대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게임을 하듯이 잠자리에 들 때가 되면 전날의 꿈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일찍 자려고 하곤 했습니다. 일찍 잔다고 해서 꿈을 일찍 꾸는 간 아니지만 꿈은 한참 자다가 아침에 일어날 때가 되면 꾸게 되는데 일찍 잠자리에 들수록 꿈을 꾸기 시작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까지 시간이 충분할뿐더러 또 그 시간이 꼭꼭 채워지고 나면 꿈속에서 제가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느 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깨어나면 이러이러하게 스토리가 흘러갔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만 꿈속에서는 그저 일어나던 일이 이어서 일어난다는, 단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 느낄 뿐 전 날의 꿈이 이어진다는 자각은 없습니다. 꿈 속이라는 것을 알 때조차 현실이 전날과 오늘 사이에 끼어들어 있다는 것은 기억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저 일어나서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들여다보니 전날의 기억나는 부분과 오늘 아침의 기억나는 부분이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따로 수첩에 그때그때 메모하듯이 생각을 적기는 했지만 길게 적는 것은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나왔을 때뿐이어서 꿈에 대해서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신나게 꿈을 꾸고도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생기는 일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꿈인지라 때로 서울에 괴물이 나타나서 지방으로 임시로 도망가기도 하는 등 황당한 사건도 많이 있었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기억에 남은 것들은 마치 외부인이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꿈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야근을 하고 나서 그날 밤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잠을 잔 후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은 아예 꿈 자체를 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계기가 없었더라도 어느 순간 꿈속에 들어가기를 현실을 사는 것보다 기다린다는 느낌이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퇴근 후 게임만 했다면 비슷한 경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몰아보기 했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것과 꿈을 기다리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는, 게임이나 영상은 잠을 줄여 가면서 해야 하지만 꿈을 꾸는 일은 잠을 줄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훨씬 적지요. 체력이 되는 한에서만 즐기기에 그만큼 좋은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꿈을 기다리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꿈을 매일 이어서 꾼다는 것은 신기하긴 했지만 정상으로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가 수첩에 글을 쏟아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어색하지만 책에서 옮긴 글과 글 사이에 메모를 넘어 제 생각을 서너 줄씩 적어 보기 시작하고 때로는 쓰다 보니 한두 페이지씩 쉬지 않고 쓰기도 했습니다. 책 여백에도 메모를 한다는 것이 어쩌다 보니 몇 페이지에 걸쳐 글을 쓰기고 했지요. 원래 점점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지다가 그런 흐름 가운데 과도기적으로 꿈으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머릿속에서 꿈으로 이야기를 만들다가 끊어지니 그것이 글로써 표출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선후를 알고 모르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그때부터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꿈을 꾸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꿈이 아무리 좋아도, 그 꿈은 나만의 꿈일 뿐입니다.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쓴 글을 아무리 좋아해도, 내가 보기에도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그 글은 그 자체로 그 순간에는 완벽한 글인 것입니다. 공포스러운 꿈을 꾸고 나서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 밤에 꿈을 꾸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기분이 아무리 좋은 꿈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서 결국 망각으로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어쨌든 상관없이 꿈은 꿈으로서의 속성, 그 속성대로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글에 담아낸 세계 역시 남들이 좋아하는 세계를 담았든, 외면당하는 세계를 담았든, 나조차 버리고 말 세계가 담겼든, 너무나 비좁고 졸렬해서 세계라고 부를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든 상관없이 그 글은 그 지면에서는 그 자체로 완벽합니다. 내가 그 글을 쓰기 위해 들인 시간과 그 환경과 그 순간에는 다른 글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물체라는 것이 있고 물체들은 물리적인 공간을 단단하게 붙들고 내 주위의 현실을 구축하고 있지만 물체 중에는 쓰레기도 있는 법이니까 글도 그럴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