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by 루펠 Rup L

꿈속에서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꿈속에서 공포에 질려 앞뒤 가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 문으로나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립니다.
꿈속에서 심각한 사안을 두고 여러 사람과 토론을 벌입니다.
꿈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사고가 날 뻔하지만 가까스로 발 뒤꿈치로 브레이크를 밟아 급정거하고, 뒤차도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많이 놀라 경적을 마구 울립니다.
꿈속에서 수험생이어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합니다.
꿈속에서 어딘지 모르는 곳을 향해 모르는 장소에서 끊임없이 걷습니다.
꿈속에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 때문에 휴대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보면서 걷습니다. 다행히 자동차가 오면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여서 미리 알고 길을 건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밴드를 운영합니다. 멤버들 간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운영한다기보다 함께 즐기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과 신경전을 벌입니다.
꿈속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강연을 합니다.
꿈속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롯데월드로 놀러 갑니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 그 사람의 일생을 살아갑니다.
꿈속에서 우주의 지혜를 직접 겪고 그 신비에 눈물을 흘립니다.
꿈속에서 모든 사람의 꿈이 담긴 도서관을 봅니다.
꿈속에서 미래에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습니다.


꿈은 이렇게 다양하게 꾸어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꿈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재미있거나, 기발하거나, 내가 생각해도 어떤 위대한 아이디어의 씨앗이 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도 기억을 합니다. 재미있어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더라도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에 잊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깨어서 몸을 일으킬 때가 되면
'무슨 꿈이었길래 내가 일어나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제정신으로는 생각해 내기 힘든 것일수록 기억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너무 현실과 달라 충격을 받은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제가 신기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의 음모론이라던가 운명론에 따르면 제가 그런 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인류의 운명이 변할 수 있는, 그런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어서 인류 전체의 본능을 따라 적어 놓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생각의 결론은, 저는 꿈의 목적 따위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꿈의 목적은, 분명 잠을 충분히 자게 하려는 미끼 같은 것은 아닐 겁니다. 꿈을 꾼다고 해서 잠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꿈을 꾸려고 잠을 충분히 잘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해도 지금처럼 피로가 풀리는 작용이 있는 한 잠은 잘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도 꿈의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습니다.
제 꿈도 때로는 정말 목적 같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신비한 것도 있지만 보통은 깨어나서 정신이 들어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극적인 건 매일같이 꾸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고민 같은 건 하지 말고 그저 꿈은 꾸는 대로 받아들이고 꾸지 않는 날은 그런 날대로 잘 자고 일어났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저 현실에만 충실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에서, 특히 회사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나면 그날은 꿈을 잘 꾸지 못합니다. 꿈이 기억날 만한 것이 아닌 것이겠지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중간에 점심시간에는 글을 쓰겠지만, 그런 날은 퇴근 후 글을 쓰지 못합니다. 써야 할 것은 늘 어디선가 나타나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마 지쳐서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회사에서 지치면 꿈을 의식 수준까지 끌어올릴 기운도 없는 걸까요?
반대로 꿈을 재미있게 꾸고 일어난 날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아침에 피곤하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여유대로 휴대폰에 글 쓸 주제들이 두세 개 더 늘어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들의 차이는 얼마나 정신적인 에너지 배분을 잘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표출하는 요령은 간단합니다. 어느 한 군데에 너무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입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느라 무리하는 일은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기하게도 책을 무리해서 밤늦게까지 읽거나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한밤중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일이 거꾸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업무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진을 빼는 그런 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어느 부분이든 너무 무리해서 몰입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그러려고 노력은 합니다. 의외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지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피곤해서 업무에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데는 신기하게도 머리를 흐리게 하지는 않기 때문에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회식이 책을 읽는 것조차 방해했다면 더더욱 회사를 혐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꿈을 꾸고 기억을 하고, 적으려고 하든 이미 적었든 꿈은 순식간에 기억에서 지워집니다. 아마 기억이 아니라 '현실로 착각한 상태'였다가 그 현실이 현실이 아니게 된 진짜 현실에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억에서 지워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릅니다. 그렇게 첫 부분부터 당연한지 어떤지 상관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하던 그것들이 순식간에 최종단까지 지워지고 무슨 꿈을 꾸었었는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서 오히려 재구성하려고 애쓰고, 다음 날이 되면 마침내 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기록해 놓은 꿈 이야기를 소설 읽듯이 읽는 것을 보면 영화 라라랜드 생각이 납니다. 감독이 그 장면을 넣으면서 그럴 의도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도입부에서 춤을 보면서 노래를 즐겁게 듣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모두 제 갈길을 가 버리는 모습이, 방금 전까지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 맞느냐 하는 그 상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라랜드의 도입부도 혹시 꿈이 걷히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꿈을 중의적으로 해석해서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의 특성을 대입해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꿈을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혹은 마지막 장면에서 꿈과 현실을 드나들 것이라는 경고를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에 사라져 버리는 속성 때문에 인류에게 있어 꿈이 일종의 신비의 의식일 거라는 생각이 싹튼 것인지 모릅니다. 바람에 장막이 살짝 흔들리고 그렇게 생긴 틈새로 우리가 들여다볼 기회를 얻은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아닐까요? 저야 현실이라고는 업무의 일상이 반복되는 쳇바퀴뿐이기는 하지만, 그런 엄청난 지혜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론이 너무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 깨달아 버려서 인류 중의 작은 한 명일 뿐인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겠다, 따위일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글을 쓰고 그 글을 쓰는 현실에 만족을 해도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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