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그리고 일을 하느라 집에 와서 뻗어버리는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회사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저 집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면 됩니다. 시대가 달라져서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그런 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점심시간에도 모두 낮잠을 자기 때문에 키보드만 소음이 없는 것을 사용하면 글을 쓴다고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지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문득, 이런 것들 모두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방이라는 것이 발명된 것에 감사할 것입니다. 과학 지식을 '이해'하는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은 그런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쓴 사람들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바흐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갖가지 LP, CD 등 재생 기구의 발명을 칭송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눈치 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합니다. 수첩에 글을 써서 그 수첩들이 쌓여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글은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조차 다시 펼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수동 타자기를 두드린다면 그건 집에 숨어서나 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표준화된 글씨체로 언제든 읽기 쉬운 글을 온라인에 저장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심지어 휴대폰으로 글을 쓴다면 움직이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이제는 노트북이 보급돼서 카페에서 키보드로 글을 치더라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수많은 취미 중에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이 두 가지 취미를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한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여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 취미가 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정보성 글은 어디서나 항상 인기가 있습니다. 특히 재테크나 디자인 분야에서 지식이 있고, 그동안 해온 실적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글은 책, 블로그 할 것 없이 사람이 몰립니다. 그 분야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야처럼 바운더리와 한계의 견적이 확실히 보이는 분야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그런 분야로는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도 꽤나 인기가 있습니다. 취미에서 머물지 않고 돈벌이가 가능한 분야라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보다 보면 유튜브 같은 경우에는 정보도 아니고 어떤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왜 구독자 수가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안 가는 그런 채널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반면 저는 공감을 해 달라는 글도 아니고, 어떤 지식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닐뿐더러, 심지어 세상에 대한 글도 쓰지 않고 대부분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과 그 생각들이 일으키는 생각들을 풀어낼 뿐입니다. 제가 쓰는 에세이든, 소설이든, 꿈을 꾸었던 이야기들이든, 사람들의 공감을 얼마나 얻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쓰다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이 글도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쓰면서 제 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 놓기 때문인지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제 글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지식을 쌓는 즐거움도 주지 못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슬픔에 대한, 분노에 대한, 재미에 대한 공감도 얻지 못하지만 스스로에게조차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글이 되겠다 싶습니다. 단지 저 자신에게 즐거움만 줄 뿐이지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주는 즐거움에 비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즐거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읽어 주시는 데에 감사하고, 공감이 간다면 거기에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 글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돈벌이가 별도로 있다는 것에도 감사할 수밖에요. 더욱 감사하려면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제 글이 저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너무 양심이 없는 가정일 것이기 때문에 건너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경제력이 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로또를 매주 구입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너무 경쟁자가 많으니 지금 상태에 만족할 만한 수만 가지 이유만 다시 생긴 것 같습니다.
문득, 제가 글을 쓰는 것만을 좋아했다면 계속 수첩에 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역곡역 근처에 돌아다닐 일이 있어 근처 카페에서 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쓰기만 하는, 쏟아 내기만 하는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남들이 모두 보는 곳에 걸어 두는 것을 좋아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글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 제가 일방적으로 중얼거리는 소리와 다름없으니까요. 결국 저는 글을 쓰고 발행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글을 씁니다. 또다시 공개를 하겠지요. 그것이 인생을 지탱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오늘은 잠들기 전에, 인생이 제 글을 지탱하는 현실을 제 글이 인생을 지탱할 수 있는 현실로 대체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가까스로 글을 쓰고 즐거움을 느끼는 삶이 아니라 즐겁게 글을 쓰기만 하는 삶을 꿈에서라도 살아 보고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