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미친 듯이 안 써지는 날이 있습니다. 머릿속이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단지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기다리면 저절로 마술사가 담요로 덮어 놓은 사람을 띄우는 장면처럼 천천히 언젠가는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을 조금 더 보고, 음악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고, 그러고 나서 제 내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과거와 현재, 몇 년 전과 몇 주 전을 비교하면서 저절로 잡생각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세를 잡고 무리해서 대단하신 작가께서 써 갈기는 대단한 작품을 쓰려고 하지 않고 단지 잡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쓰려는 것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옵니다. 게다가 어떤 잡생각이든 골똘히 집중하면 끊임없이 '의식의 흐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어디론가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그것들은 일면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글로 써 가면서 천천히 따라가면 점차 카메라 렌즈를 돌리듯 초점이 맞아 갑니다.
하지만 미친 듯이 안 써지는 날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여전히 들썩이는데 그 시작부터 문장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쓸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안 써지는' 상태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슬럼프는 아니지만 슬럼프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조금 열심히 하거나 낙서를 하거나, 정말 쓸모없는 글을 써 보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쓸모없는 글을 쓰는 것이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쓸모가 없다고 해서 말도 되지 않는 '가나다라'같은 것을 적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내 책상은 하얀색이다. 책상에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가 있다. 내 휴대폰 충전기는 무선 방식인데 하얗고 동그랗게 생겼으며 충전 중일 때는 파란색 불이 들어온다'처럼 내용은 있지만 조금도 생각이나 고민은 하지 않고 눈으로 들어온 것을 그대로 손으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건 연습이 아니고, 글을 쓰는 재미를 잃지 않기 위한 방책일 뿐입니다. 원리는 모르지만 보통 이렇게 하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하나의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비교'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원인이든 어떤 경우든 관계없이 저렇게 기계적인 쓰기를 하면 생각을 누르는 어떤 의식적인 압박감이 사라져서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단지, 그때뿐이어서 다음에도 언제 다시 그런 기분이 들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원인을 발견한 이상, 그 빈도는 확실히 낮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교.
어릴 적, 다른 친구와, 혹은 엄마 아는 아주머니의 아들/딸과 성적을 비교하는 말을 듣던 것이 체화된 것인지, 아니면 반 등수를 계산하곤 하던 습관 때문인지 비교는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살면서 의식적으로라도 직접적인 비교는 잘하지 않았고 그런 말을 들어도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상관이 없는 일인 줄 알았으나, 이제 보니 그건 상당히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제가 굳이 비교할 글 두 편을 들고 오지 않아도 실시간 비교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어떤 글을 읽고 '와,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면 저절로 제가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을 하는데 그 첫 생각부터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그런 것을 무시하더라도 실제로 글을 쓸 때가 되면 '이렇게 가면 그 글하고는 많이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비교는 존재하는 두 편의 글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본을 정해 놓고 지가 글을 쓰는 과정 자체를 그 표본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글을 실제로 쓰여지기 전에, 쓰여지려는 순간 태생부터 틀어막아 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막겠다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건 남의 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제 글을 읽고 '아, 이게 내 스타일에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똑같이 문장의 시작부터 어떻게 해야 그런 스타일로 읽힐 수 있게 쓸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글은 시작하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글은 제 글답게 읽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제 글답다'는 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글을 더 써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제가 죽을 때까지 쓴 글을 모아서 잘게 부수고 글 쓰는 버릇을 뽑아내고 언어를 분리해 내고 각종 계산을 해 내고 나서야 제 스타일이 어떤 건지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그것을 실체라고 믿고 비교의 대상으로 아직 쓰여지지 않은 제 글을 갖다 댄다면 저는 영원히 앞으로 아무것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시 읽어 보았을 때, 심지어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문장이 있거나 오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읽어본 것임에도 마음에 드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반응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글이 있으면 어김없이 앞으로도 그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다음 글을 쓰려고 할 때면 저도 모르게 그 생각이 문장을 길목에서 막고 검열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어도 결국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각에서 긴장을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생각 자체를 자유롭게 해야 정해진 길도 없어지고 정해진 길이 없어야 감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여전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키보드의 눌리는 느낌이 어제와 다르다. 운동을 하고 와서 손가락이 뻣뻣해진 건지 키보드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같은 사실의 나열로 그런 기분을 빠져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계속 써 나갑니다. 어릴 적부터 말 안 듣는다고 혼나던 것이, 이제는 제가 저 스스로를 야단쳐야 할 지경인데 또 과정을 자세히 보면 야단을 맞는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글은 의식의 세계에서 쓰여지는 건 아닌가 봅니다. 생각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란 나무가 의식의 세계에 비치고 있는 그림자이고, 무의식의 세계는 디지털 파일 같아서 의식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실제로 재생하기 전에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메모리 카드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 세계가 어디에 들어 있는 건지 눈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본체, 원래의 나무가 어디에 어떻게 들어있는지 모르니 좀 더 아름다운 단풍으로 바꾸겠다, 쓸쓸한 겨울나무였으면 좋겠다, 하면서 아무리 희망사항을 늘어놓은들 손을 댈 수가 없지요. 그저 떠오르는 대로 적을 뿐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제가 어쩌면 하나의 텔레비전처럼 무의식의 수상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전파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것이나 제 무의식의 생각이 어디서 오며 어떤 방식으로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인지, 심지어 그것을 어떻게 문장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