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by 루펠 Rup L

동양하루살이 뉴스가 하루이틀 뉴스에 등장하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동양하루살이가 창궐한 것이 한강 수질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반대로 조용히 사라진 것이 수질이 몇 주만에 갑자기 안 좋아졌을 일은 아니고 기온조건 등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방역에 여러모로 힘쓴 분들이 있어서도 괜찮아진 것이겠지요. 저는 하필 그때 일이 있어서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하철을 탈 일이 없어서 겪어보지 못했지만,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뉴스에 나오기 전에 겪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하루살이에게 세상은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번의 밤과 한 번의 낮일 수도 있고요. 그들에게 세상의 크기는 그들이 날 수 있는 거리로 한정됩니다. 쉬지 않고 날아서 직선으로만 갔다면 그만큼 세상은 넓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여전히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나 큽니다. 한 시간 동안만 살아가는 곤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에게 세상은 무한한 곳입니다. 공간적으로도 자신의 움직임으로는 끝을 볼 수 없고, 하늘도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늘의 색조차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개체가 수두룩할 것입니다. 기록을 남긴다면 죽은 시간에 따라 하늘의 색과 밝기가 달라진다는 것쯤 알 수 있을 테지만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다일 것입니다. 더 멀리, 더 멀리 가더라도 그 기록을 보러 오는 개체가 거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수명이 짧을수록 세상에 비해 작고 무력한 존재가 됩니다. 개체의 크기에 의해 공간적인 자율성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수명 자체가 짧으면 생활하는 범위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개체끼리 모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한두 마리가 멀리 간다고 해서 유의미한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겠지요.
사람은 어떨까요? 100년의 수명이라고 가정하면 매일 하늘에 해가 뜨면서 밝아오고 하루가 지나면서 태양이 지구상에서 비추는 위치의 변화에 따라 하늘의 색이 변합니다. 때로 구름 때문에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도 하다가 결국 저녁이 되면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낮이 오고 밤이 오지만, 지구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1년에 걸쳐 평균 온도도 점점 떨어졌다가 점점 올라갑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잠을 자기에 훌륭한 주기의 표시가 되고 평균 기온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은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 의식주를 해결하는 좋은 방편이 됩니다. 물론 그것을 충분한 수명으로 주기로서 인식을 하고 나서야 가능한 응용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수명이 100년 정도이기 때문에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주기는 일과 년 정도입니다. 관찰과 기록 외에는 사람이 인식하는 주기는 그것보다 길지 못합니다. 사람이 몇만 년 살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기록으로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그런 주기 말입니다. 대신 그렇게 된다면 사계절도 24시간처럼 수많은 반복 중의 하나가 되겠지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에게 있어 시간이 늘어난 만큼 공간에 대한 한계 역시 훨씬 높게 설정되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관점이 그렇게 달라졌다면, 그리고 과학의 근간이 되는 기록 역시 몇 만년 사람의 수명보다 훨씬 긴 기간을 두고 이어 내려왔을 테니 수명이 늘어나고 일생의 100분의 1만큼의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난 만큼이나 우리가 쓰는 글 역시 매우 길지 않을까요? 말도 매우 느릴 것이고요. 우리 일생의 100분의 1이 1년이니까 하루는 우리 수명의 36,500분의 1이 됩니다. 우리가 5분 동안 읽을 글은 우리 인생에서 438,000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명이 만 년이라고 하면 현재 수명의 백 배이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현재의 5분에 해당하는 길이는 500분, 그러니까 약 8시간이 됩니다. 같은 분량을 8시간에 걸쳐서 읽도록 신경도 헐겁게 만들어져 있거나, 그게 아니면 우리와 똑같이 그런 내용의 글을 5분이면 가뿐히 읽고 평생 활동량도 어마어마한 생물이 되어 있겠지요. 하지만 수명의 50만 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는 8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5분보다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5분이면 읽는 글을 만 년을 살아가는 인간은 8시간 동안 읽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이미 그 나이까지 살아온 사람들이 리듬을 그렇게 정착시켜 놓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100살이 되어서도 어차피 인생이 100배 더 길기 때문에 여전히 아기일 테고 말입니다. 마도 만 년을 사는 인간에게 우리의 움직임은 우리가 쥐를 보듯이 지나치게 빠른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수명이 긴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각하는 속도 역시 수명에 따라 느려진다고 하면, 글을 쓰는 속도도 우리에 비해 빠르지 않을 것이고, 제가 한 시간 동안 쓸 글을 100시간 동안 쓸터이니, 생각할 시간이 많다고 느긋하게 마음껏 글을 쓰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가 한 시간 동안 쓸 글을 생각하기 위해 가만히 생각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듯이 만 년을 사는 인간 역시 그에 준하는 인생의 비율을 투자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명이 우리보다 훨씬 짧은 지성의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매우 빠르게 생각하고 최대한 멀리 가기 위해 시간을 압축하듯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글을 읽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가만히 있는 5분이 너무 아까울 것입니다. 우리보다 수명이 10분의 1이라면, 그들의 언어로 우리가 5분 걸려 읽을 글은 30초면 읽을 것입니다. 그만큼 빠르기는 하지만 인생의 끝도 빠르기 때문에 결국 도달하는 것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서 그들처럼 언어를 사용한다면 우리의 언어와 사고방식도 그들처럼 10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 전체가 그러지 못한다면 저라도 그렇게 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상상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글로 써서 따라잡아 보려고 하지만, 언어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언어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없나요? 그 많은 철학이 각각의 문화권마다 자리 잡고 있고 그 철학에 따라 언어들이 발전을 했지만, 그 언어들이 집중했던 몇몇 개념을 단어로 만들어 압축해서 사용하는 것 말고는 일상생활에서 모든 인류가 정보와 감정 등을 전달하는 속도가 거의 똑같다는 것이 말입니다. 생각하는 속도가 결국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언어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속도는 수명을 보고 각 생각이 인생의 길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정해지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나면 생각하는 속도도, 각 언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압축성도 모누 길게 늘어져 버릴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삶의 속도에 비해 수명이 짧다고 느낀다면, 정보의 전달, 감정의 표현도 보다 함축성 있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예술가들이 언어에, 그림에, 음악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초조해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초조함은 이루지 못할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서 욕심을 내는 것이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그저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뿐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러나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 오히려 예술가들이 하려고 한 것을 보다 적은 힘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분에 한 번씩 티스푼으로 물을 컵에 담는다고 할 때, 그걸 어떻게든 더 빨리 넘치게 하려고 티스푼을 더 큰 것으로 바꾸고, 컵을 더 작은 것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과, 애초에 1분이 6초 길이와 같은 것은 결과적으로는 원래 정해진 것보다 물이 빨리 넘친다는 공통점은 있겠지만 들이는 힘은 처음부터 배경이 가혹한 것이 덜 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전에 이미 살아온 몇 십 년이 있어서 생각하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속도를 생각에 맞추느라 글을 천천히 쓰는 연습을 한 것이 이미 십여 년입니다. 그래도 더 빠른 생각, 더 많은 생각, 더 함축적인 글에 대한 욕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고민이 조금씩 저를 변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니체의 초인 같은 개념으로만 머릿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저를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글을 향해 이끌어주면 합니다. 5분을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5분씩이나 들여서 할 생각이었는지 시간이 아깝다 같은 그런 100년 수명 기준으로 경솔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5분이라면 조금 더 풍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을 덜 동원하는 그런 쪽의 노력을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정신 건강에는 5분이면 수명이 300년이었다면 15분이나 걸려서 했을 생각인데 수명이 100년인 덕분에 5분 만에 해냈다고 뿌듯해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맹목적인 글쓰기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