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는, 어떤 열병 같은 것이 머릿속 가득한 날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문장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글의 내용보다도 중요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며 생각을 문장과 최대한 가까이 붙이는 과정이 어떤 비밀스러운 기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공사장에서 포클레인을 사용해서 땅을 파지만, 땅을 파는 이유가 건물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포클레인의 동작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목적인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에게는 따로 연구실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연구용 글을 따로 쓸 수는 없습니다. 글만 쓰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 싶지만 사실 그런 게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없겠지요.
물론 그런다고 해서 글의 스타일이나 습관 같은 것이 눈에 보이게 바뀔 리는 없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을 타는 이유를 물어보면 단지 자신은 산을 타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제가 글을 잘 쓰기 때문도, 어떤 예술가들이 말하듯이 그 문장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글을 써야만 하는 감옥에 갇혀서 글을 쓰지 않으면 고문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을 머릿속에서 받기 때문 같은, 흔히 하는 말처럼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 것 같은 그런 강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감옥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쓰는 것은 제 자유이고, 며칠이고 글을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지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단지 글을 써야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온전한 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 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의 책을 읽는 것만이 빈 시간을 차곡차곡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꼭꼭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때때로 정말로 등산이나 암벽 타기가 취미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까요. 무슨 봉, 무슨 봉, 어디 무슨 산 같은 자신이 지나온 자취들이 이름으로 남습니다. 그 이름들의 리스트를 남들에게 보여주어도 기분이 좋기는 하겠지만 혼자 들여다 보아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반면 저는 제가 쓴 글들을, 고작해야 가리고 가려서 진작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들 말고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혼자 들여다보아도 그 글이 그 글 같고, 특히 공개하지 않은 어떤 글들은 중간에 무슨 뜻으로 쓴 문장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산 같은 물리적인 공간을 취미로 하고 있으면 산이 물리적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기억으로 남는 것이 실제로도 인정받을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은, 문장은 마치 연기 같아서 신들린 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았어도 스스로에게는 인정하기 쑥스럽듯이 다시 읽어 보기에 그렇게 간지러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박수갈채를 받을 정도의 글은 아직 쓴 적은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어떨지, 지금 생각이 남에게 어떻게 읽힐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 마구 써 내려갈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는 길이 그럴까요? 문장들을 보면 딱히 발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닙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쓰는 것 자체가, 글을 쓰는 데에 지금 시간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잠들어있던, 혹은 억눌려 있던 뭔가를 깨우는 걸까요? 제가 글을 조금 더 잘 쓴다면 예술가가 붓을 마구 휘두르며 붓터치를 아래쪽에 새기고 붓에서 튀어나온 유화 물감의 덩어리를 저 위쪽에 태양처럼 맞혀서 붙일 텐데, 하는 유쾌한 상상까지 해 가며 글을 씁니다. 이렇게 글을 쓸 때면 액정도 원래의 흐리멍덩한 무채색인 척하는 어두운 노란색에서 정말 새하얀 백지가 된 것처럼,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읽는 문장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길을 걸으면서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바닥에 구멍이 없는지, 멀리서 움직이는 것이 없는지, 어디에 발이 걸릴 만한 것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는지 눈동자를 굴리듯 똑같이 전 문장과 아예 다른 말을 하지 않도록 흘끔흘끔 다른 문장들도 쳐다보게 되는데, 그 내용과 지금 쓰려는 문장만 중요해서 배경 따위는 그냥 종이인 척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액정의 배경은 옛날에 많이 쓰던 갱지와 비슷하기는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인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문장이라도 괜찮습니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갔다가 붙잡혀서 일곱 난쟁이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탈출하려고 할 때마다 얼굴만 있는 고양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거스 필치가 나타나 도서관에 가두고 마법 모자를 씌워서 도망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 같은 문장도 혼자 쓰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만 않으면(저는 방금 보여준 셈이지만) 아재개그니, 유머 코드가 올드하다느니 하는 핀잔도 들을 일이 없습니다. 꼭 웃긴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글을, 철학적인 글, 전 우주를 아우르는 타노스 같은 시야를 가지고서만 쓸 수 있는 글 따위를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문장, 한국어만 할 줄 알면 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 그런 것들을 손가락을 사용해서 종이에, 액정에, 모니터에 문장으로 적어 놓고 자신의 머리에서 손을 통해 '문장'이라는 형태의, 외계인이 보았다면 암호요, 일정한 뜻이 담긴,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처럼 그림이자 글자인 무늬가 생기는 것인데, 방금 그 무늬를 만든 우리는 그 뜻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은 그 뜻을 파악한 다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뜻을 정확히 의미하는 문장을 그림으로, 무늬로 그려 넣었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남들도 좋아하기 바라는 것은, 산악 동호회 활동 몇 달 해본 사람이 전 국민이 안나푸르나 등정을 하고 싶어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 같은 어쩌면 뜬구름 잡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아서 글쓰기에 좋은 날, 글쓰기에 좋은 시간, 글쓰기에 좋은 기분, 글로 표현하기 좋은 생각들을 계속해서 써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동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등정은 함께 모여서 하면 좋지만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풀어놓는 것이라서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말을 한다면 한 명은 생각을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는, 인터뷰의 형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예를 잘못 든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다 쏟아 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내일 또 써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