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새벽의 축복

by 루펠 Rup L

밤과 새벽은 하나입니다. 같은 것의 시작과 끝일 뿐입니다. 해가 지는 저녁은 그렇게나 많은 소리와 빛으로 꽉 차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낮이 태양빛과 생명으로 가득 찬 색깔의 하늘의 세계라면 저녁은 노을에 더해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와 하나하나 불이 켜지는 아파트의, 그리고 퇴근길 먹자골목의, 한가한 거리 가로등의 불빛이 부드럽게 내려오는 사람이 만든 빛의 세계이자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동차의 소리와 길거리의 음악소리가 마치 아스팔트가 스피커인 양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는, 땅의 소리의 세계입니다. 낮은 햇빛에 압도되어 모든 빛은 태양빛이고 모든 소리도 숨을 죽이는 시간입니다. 가끔 들리는 음악 소리나 매미소리는 마치 태양으로 물든 공기를 찢고서야 그 사이를 비집고 귀에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낮에서 저녁으로의 그 변화는 그대로 밤으로 이어집니다.
밤은 햇빛이 없는 또 다른 낮입니다. 사람들이 떠들썩한 저녁과 달리 점점 침묵이 영토를 넓혀갑니다. 술집이 모여 있는 곳을 빼고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입니다. 그나마 전기 자동차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갈 때처럼 밤이 한두 시간 만에 한 번에 변하지는 않습니다. 밤은, 저녁이 오고 나서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도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계속해서 이어받는 것입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마칠 시간이면 밤이 됩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하나 둘 취해서 집에 가려고 해야 밤이 됩니다. 새벽이 되어야 밤다워지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밤이 몇 시간 되지 않습니다.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소리가 없다 보니 얼마 없는 소리의 밀도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집 안에 있어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길거리에 떨어진 캔을 발로 차면 마치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도 들려옵니다. 누군가 아파트 다른 층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않으면 그 소리들을 기대하며 정신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새벽은 이 모든 것의 극대화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신도 약간의 몽롱함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소리가 그대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밤에는 술 한 잔 하면서 이어 나가는 상상의 조각들이 새벽에는 오히려 커피를 내려 홀짝홀짝해야 의식의 영역으로 부드럽게 끌고 와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밤과 새벽은 하나이지만, 우리의 잠의 시작과 끝이어서 잠들기 전의 피곤함, 자고 일어났을 때의 몽롱함이 됩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쪽은 자고 일어났을 때의 몽롱합입니다. 그것은 생생한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을 떠올리려고 할 때의 그 몽롱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가지 역시 꿈처럼 조금은 더 자유롭고 환상적입니다. 그렇지만 밤 역시 새벽보다는 못하지만 낮보다는 글을 쓰기에 훨씬 좋은 시간입니다. 햇빛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카페에서조차 생생한 그런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생생한 일이라고 해서 돈을 번다는, 생산적이라는 그런 의미보다 깨어서 현실에 대한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등학생이 방학 때 학교에 가지 않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생산력 있다고 할 만한 그런 일은 아니지만 현실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생생한 일이겠지요. 그러니까, 뭔가를 내가 상상해서 한다기보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더라도 내가 상상을 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이라고 해서 생산적일 수는 없습니다. 나를 내주고 환경을 누리는 것이 현실적인 것일 뿐이니까요. 그것을 외면하고 내 안으로 들어가 내 생각과 내 상상과 느낌에 집중하면 그건 현실적이지도 생생하지도 않은 일인 것입니다. 왠지 낮에는 그런 것을 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반면, 새벽에는, 그리고 깊은 밤에는 태양의 압박이 없습니다. 태양의 압박으로 왠지 태양의 선물을 누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지 않습니다. 아무것에도 감사하지 않고, 생명의 신비라거나 신의 은총 같은 것도 모두 우연의 일치가 모여서 이루어진 일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내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잠이 들면 결국 우리의 몸과 정신도 결국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꿈조차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잠을 잘 때처럼 세상과 동떨어져, 출퇴근의 리듬에서 벗어나 아침 시간까지 새벽의 연장이 되고 새벽조차 밤의 연장이 되는 그런 시간의 뒤틀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글을 쓰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 햇빛이 제 생활을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떠들썩한 소리가 가라앉을 때가 되면 저도 준비를 하고 다음날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니라 주섬주섬 일어나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소리의 현미경을 댄 것처럼 축축한 공기를 뚫고 나오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걸어가면서 한 마디 하는 것이 울려서 뭔가 다른 말을 한 것처럼 들리는 그런 것들을 온전히 제정신을 통과하도록 물러서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밤이 지나고 나면 저도 의식을 내려놓고 결국 잠을 자겠지만, 느지막이 일어나 새벽 같은 아침을 밤새 꾼 꿈으로 시작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 새벽 같은 아침은 실제로는 새벽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막 잠에서 깨어난 저는, 바쁘게 출근 준비를 위해 강제로 꿈의 몽롱한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확 잡아당겨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천천히 녹아들면서 다시 글이 될 생각들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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