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글만 쓰는 삶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사실 이게 어렵거나 거창한 건 아니다. 그저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그 사이의 빈 시간 동안 빈둥빈둥 글을 쓸 생각을 하며 머릿속을 자유롭게 정리하는 것 뿐이다. 실제 글을 쓰는 시간은 한두 시간, 혹은 이삼십 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글을 써서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삶'과 '글을 쓰는 삶'은 엄연히 다르다. 그저 단순히 글을 쓰는 삶이라면 현재의 나처럼 돈벌이가 따로 있고 짬을 내어 글을 쓰는 것뿐이어도 삶의 중심은 글을 쓰는 쪽으로 기울여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된다. 돈을 벌 필요가 없어서 글만 쓰면서 살 수 있는 것과 같다.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글의 가치와 그림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감정적으로나 그 시간의 질적으로나. 그러면 표현을 할 의무가 있는 사람과 표현할 자유를 누리는 사람으로 다시 말할 수 있다. 뭔가를 표현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사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표현을 해야 하는 사람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에도 만들어 내어서라도 표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상을 매의 눈으로 강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그런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매 순간을 긴장하면서 살 수는 없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 글의 흐름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당장 쓰고 싶은 것은 없지만 뭔가를 써야 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서의 대화같은 것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샅샅이 뒤져 보아야 하는 것은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생각을 글을 이용해서 문장으로 옮기고, 흘러나오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글이라는 것 자체를 쓰고 싶지만 써야 할 것이 딱히 없어서 고민을 한 적은 있지만 써야 하는 의무감까지 짊어진 적은 없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능력이 없는 것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아마추어의 특권이기도 하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작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자체가 나 자체를 나 자신의 하인으로 생각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으로 매 3일마다 작심삼일을 하면 되지 않겠냐, 라는 말도 농담삼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절대 농담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두 번 내 몸을 강제하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몸의 저항이 심한데 그것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하라니!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이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늘 생긴다는 것이 불행이다. 그런 불행이 없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인데 우리까지 자신에게 그런 짐을 더 올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주말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게으르게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구상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구상하는 것과 그냥 구상하고 '언젠가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써야 한다'가 '쓰고 싶다'로 바뀔 때까지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미루어 버리는 것만큼이나 서두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새벽부터 꿈을 두 개나 기억이 나도록 강렬하게 꾸었다. 하루 종일 써 보려고 노력했지만 기억의 조각이 너무 작다. 조금씩 복구해 나갔는데도 한 장면만 기억이 났다. 결국 적을 만한 길이가 될지는 써봐야 알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즐거웠다. 꿈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글을 쓸 준비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쓰고 나서 저장만 하게 되더라도 문제는 없다. 글을 남에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운동이나 모든 면에서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십중팔구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워낙 '할 수 있다!'라던가 긍정의 힘, 또는 의지력 같은 말이 익숙하니까.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저항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 주면 자연스럽게 해 나갈 수 있다. 매일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면, 스스로 밀어붙인다고 인정하는만큼 저항이 생긴다. 매일 양치하듯이 아침이니까, 점심시간이니까, 퇴근했으니까 운동한다고만 생각하고 욕심내지 않고 한다면 매일 운동할 수 있다. 어디에 올려야 하니까, 구독자가 떨어져 나갈 수 있으니까, 기다리다가 실망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무조건 글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부담이 저항이 된다.
다시 월요일이다. 내일부터는 또다시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밤에 글을 쓸 준비를 할 것이다. 점심 시간에 글을 쓸 수도 있다. 뼈대만 세우고 밤에 글을 쓰다가 결국 화요일에서야 글을 제대로 쓰게 될 수도 있다. 계획도 없고 계획대로 되는 일도 없다. 글쓰는 것은 취미이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회사일처럼 업무계획에 따른 실적관리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업무 비슷하게 넘어가는 순간 의무감 때문에 돈도 되지 않는 부업쯤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고 곧이어 돈 안되는 부업이니 정리를 해 버리는 수순으로 어느 새 도달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문학 관련 학과로 진학하겠다는 말에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해야 한다. 돈벌이로 하면 결국 모두 잃어버린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그 취미라는 말 뜻을 잘 새겨야 한다. 전공분야나, 심각하게 일을 하듯이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이제까지 살면서 내 스타일이라고 깨달은 모든 것들을 글쓰기에서는 받아들일 생각이다. 내 습관대로 글을 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쓰고, 내가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대로 주제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학 관련 학과로 진학하지 않았으니, 심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말에 공감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는 사람들에게서 늘 듣는 판에 박힌 질문이 있다. '진심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진심인 것이 어디 있을까? 돈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24시간 글쓰기에만 매달린다면 그게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글쓰기보다 회사 업무를 더 좋아하는 셈일 것이다.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진행상황을 빠짐없이 Follow-up하고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내가 업무를 하는 스타일과 글을 쓰는 스타일의 차이이다. 그 스타일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어떻기 때문에 진심이 아니고 어떻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는, 미용실에서 남 욕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것이고 정말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그냥, 나처럼 오래오래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취미가 글쓰기'라는 말이 절대 어색하지 않기를. 하루 종일 글을 쓸 내용을 다듬느라 즐거웠다는 말에 '저도요!'하는 사람이 많기를. 그래서 이디 가서 작가가 아니지만 취미가 글쓰기라는 말에도 아무도 토달지 않고 취미가 암벽타기라는 것만큼이나 그냥 특이하네, 정도의 반응만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