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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May 30. 2024

머리 위의 하늘과 창문 속의 하늘

하늘이 무척 아름다운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군데군데 새하얀 구름이 붙어 있는, 마치 옛날 윈도우즈 XP 배경화면을 옮겨 놓은 듯한 하늘. 그대로 퇴근해서 여의도로 놀러 가면 좋겠다, 2호선을 타고 당산철교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무실 커피머신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자리에서 홀짝거리며 마시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 건물 앞에 가서 하늘이나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창문을 내다보았다. 사무실 벽 전체에 걸쳐서 길게 창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창문으로 내다본 하늘과, 밖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똑같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들어 주었다. 옥상에 올라가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계단에서 계단에 난 조그마한 창문으로 하늘을 보았다. 마치 액자에 아름다운 그림을 넣어 걸어놓은 것만 같았다. 야외에서, 하늘 바로 아래에서 하늘 전체를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샤시는 알루미늄에 오래되어 회색의 여기저기가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액자가 못난 만큼 하늘은 빛났다.
그때 깨달았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 같던 아름다운 하늘도 비교할만한 못난 배경이 생기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군대에서 먹은 컵라면과 똑같은 제품을 제대하고 나서 먹으면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글에 아침, 점심을 굶고 나서 네시쯤 먹으면 맛있다는 충고가 댓글로 달렸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시간을 보내도 그 안에는 그리운 것이 생긴다는 말도 있다. 모두 마찬가지이다. 프레임을 워낙 못난 것으로 해 놓으면 그 프레임보다만 나으면 무엇이든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어떤 어려운 기간을 보내더라도 그 어려운 일보다 낫기만 하면 빛나는 순간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 현상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프레임이 나빠서 그 안의 풍경이 예쁘게 보이더라도 그렇게 보기 위해 그 프레임을 필요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래된 샤시로 내다본 하늘이 예쁘다면 직접 나가서 정말 예쁜 하늘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정말 예쁜 하늘이라면, 그 프레임 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어야 한다. 프레임이 줄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그 안에서 누리는 햇빛, 따뜻한 온도 등이다.
라스베가스에 20여 년 전에 갔을 때, 하늘처럼 칠한 베네치아 호텔 내부 광장에서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는데, 맨눈으로 본 것과는 다르게 조명이 또렷하게 구분되어 나와서 색칠이라는 것이 눈에 확 띄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베네치아처럼 높은 하늘 아래에 내가 있고 그 아래에 수로가 있어서 그 수로를 배를 타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처럼 만든 배경 안에 놀이공원처럼 만든 얕은 수로와 배가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다시 보겠다고 다시 라스베가스에 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늘은, 물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것이니까. 가더라도 베네치아에 가야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리워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그리워한다면 다시 가볼 수도 있다. 지금 무슨 규칙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 실재가 아니면서 실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이지만 그 가짜로써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가짜 나름대로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지 그것 때문에 실재보다 그 가짜를 더 실재처럼 믿으면 위험하다는 것뿐이다.
액자에 담긴 하늘 같았던 창문을 보니 일본의 정원이 생각났다. 모래를 가지고 파도라고, 물이라고 하던. 그것을 보고 마음이 평안해졌다면 모래를 가지고 그런 효과를 낸 것이다. 그 모래가 파도와 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서 물을 보고 마음이 평안해진 것과 같다고 하면 곤란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속고 나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그 창문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며 하늘을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두기까지 한다. 하늘은 하늘이고 구름은 구름이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예쁘다면, 진정 그 주어가 하늘이 맞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으로 나가서 예쁘지 않으면 창문이 하늘에 비해 너무나 못생긴 것이다. 아무리 비싼 샤시라도 상관없다. 천억을 주고 구입한다고 해서 파란 하늘보다 예쁜 샤시가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 샤시를 통해 하늘을 보았는데 하늘이 예뻐 보인다면 그 샤시보다 예쁜 것일 뿐일 테니까.
마음을 너무나 명료하게 알지만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에게조차 수없이 속아보아서 경험상 아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오면 또 똑같은 방식으로 속고 나서 나중에 가서 그 경험을 더욱 공고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속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속아서 억울하지 않다. 샤시가 예뻐서 액자를 들이려고 하지만 하늘이 억울해하지 않으니 내가 다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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