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을 위한 영화 리뷰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

by 우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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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남자를 잘 모른다. 집 앞 신사의 할머니가 거리를 빗질하는 소리에 깨어 씻고, 수염을 다듬고, 화초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현관 앞에서 차 열쇠와 동전을 챙겨 집 앞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 낡은 밴에 올라 카세트테잎으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러 간다는 것 밖에. 할당된 공중화장실을 돌며 청소하고 공원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일이 끝나면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어수선한 아사쿠사역 상가에서 꼬치에 맥주 한잔을 한다는 것 밖에는.


그가 청소하고 있는 화장실에 급한 남자가 쳐들어와 그가 비켜줘야 했을 때, 남자가 짓는 웃음을 보고 나는 이 영화가 좋아졌다. 그는 이제 막 변기하나만 청소했을 뿐이다. 다급한 그 사내는 아직 청소하지 않은 변기를 썼으니 참 다행이라는 듯한 웃음. 다급한 여성이 쳐들어왔을 때는 자리를 비켜주며 남자는 문 밖에 서 있다. 거기, 벽에 비치는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아름다워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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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매일 겪고 있는 똑같은 하루는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기회다. 그의 세상은 단조롭고 평화롭지만 주변에서는 시끄러운 일이 한가득이다. 그의 어린 동료 '다카시'에게는 좋아하는 '아야'라는 여자가 있는데, 데이트할 돈이 필요하다고 이 남자의 오래된 카세트테잎을 팔자고 졸라대는 통에 결국 그는 지갑을 탈탈 털어주고 결국 저녁을 컵라면으로 때운다. 다카시는 그의 테이프까지 훔쳐서 아야에게 줘버리는 통에 여자는 이 남자, 히라야마를 만나러 온다. 그녀는 말없이 패티스미스 음악을 함께 듣다가 그의 볼에 기습뽀뽀를 하고 떠난다. 이 남자는 오랜만에 들떴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뽀뽀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찾아왔는지 묻지 않았으니까.


그는 세상에 어떻게 숨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는 청소부의 유니폼을 입을 것. 혼자 일할 것. 그에게는 현실의 모든 일이 저만치서 돌아가는 일일 뿐, 끼어들지 않는다. 그가 매일 지키는 하루의 루틴은 불안한 삶에 안정을 갖기 위한 것이다. 그 루틴대로 살면 큰 만족은 없지만 소소한 기쁨이 있다. 하루의 우연, 자연의 아름다움. 동료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히라야마상은 엄청 유능한데 엄청 과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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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주말이면 히라야마는 코인세탁소에서 빨래를 돌리고, 일하는 동안 틈틈히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정리하고 책방에서 100엔짜리 문고본을 산다. 주말엔 늘 여주인이 친근하게 맞아주는 술집에서 특별대접을 받으며 술 한잔 한다. 그런 그 앞에 어린 조카가 나타난다. 안 본 사이 훌쩍 큰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히라야마는 자기 방을 내어준다. 그는 창고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여느 아침처럼 출근하려고 하는데, 조카가 깨어나 일하는 데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다른 한사람을 위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더 뽑고 음악 선곡을 맡기고, 화장실 청소도 함께 한다. 공원에서 함께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고 목욕탕도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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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 후, 그는 목욕탕에서 공중전화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그 날, 여동생이 그의 집 앞에 나타난다. 기사까지 딸린 고급 세단을 타고 온 그녀는 가출한 딸을 데리고 간다. 조카는 엄마를 부른 삼촌을 원망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든 다시 와도 좋다는 약속이다. 여동생은 히라야마에게 '정말 화장실 청소 일을 하냐'고 묻는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동생은 히라야마를 불쌍하게 쳐다보며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에 한번 방문해보라고 한다. ‘예전만큼 심하게 하시지 않을거야’라며. 평정심을 유지하던 히라야마는 복받쳐 운다. 히라야마는 아버지에게 만족스러운 아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음악과 책, 식물을 사랑하는 성실한 점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은 내일이고 지금은 지금.


다음날, 동료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전화가 온다. 빌린 돈도 갚을 거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다카시에게 히라야마는 ’왜 그만두냐‘고 묻지 않는다. 늘 그 곳에 있을 줄 알았던 노숙자도 갑자기 사라졌다. 선술집에서는 여주인이 처음보는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것을 봐버린다. 히라야마는 복잡한 마음으로 담배와 술을 사들고 강이 보이는 공원으로 간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에 기침을 하는데, 여주인과 포옹하던 그 남자를 만난다. 그는 여주인의 전남편이라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내를 만나러왔다고 말한다. 미안하다고, 아니 고마웠다고,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나러 왔다고 말하는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자기 아내를 부탁한다. 궁금한게 많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남자는 ’그림자는 겹쳐지면 더 진해질까요?‘라고 묻는다. 히라야마는 해보면 된다며 그와 그림자를 겹쳐보는데, 더 진해지지도 옅어지지도 않는다. 이럴 순 없다며 분통 터트리는 히라야마. '뭔가를 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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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질소리가 가득한 아침. 히라야마는 다시 깨어난다. 밴에 올라 햇살을 마주보며 음악을 듣는다. 뉴-데이, 뉴-라이프. 무언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죽음은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죽음은 늘 그자리에 기다린다. 여주인의 전남편처럼. 히라야마는 과거의 실패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가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조금 벌고 조금 먹으며 하루 그리고 일주일을 루틴대로 사는 것이다. 루틴을 만드는 것은 불안한 삶에 안전한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시도한 삶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도 결국 그 끝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을때 그는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오갈데 없다고 생각했던 노숙자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났다. 희망과 절망감으로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를 보았을 때 히라야마는 느끼고 있다.

자,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다시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뉴-데이, 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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