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새벽은 농부의 시간
아직까지 새벽은 농부의 시간. 입추 지나고 말복 지나자 거짓말처럼 선선해졌어도 한낮은 아직 땡볕. 살아남자면 볕을 피해야지. 잠든 아이의 이마를 짚은 뒤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는다.
날이 밝자면 아직도 한 시간. 밤이 길어져서 다섯시에도 세상은 희끄무레한데 종태할배는 벌써 밭머리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네. 하마 나오셨니껴. 뜨겁기 전에 뭐라도 하자면 안나올 수 있나 날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그러게요. 어지간해야 말이지요. 폭염이 한달. 폭군의 폭정이야 세상을 버리거나 활빈도가 되어 피한다지만 폭염은 피할 수 없는 가렴주구. 옥수수는 잎이 마르고 콩꼬투리는 오그라붙었지. 무는 싹이 안나고 단호박은 아예 접었는데.
거둘 것 없는 빈 들이어도 새벽은 농부의 시간. 어둑어둑할 때 풀을 베고 희끄무레할 때 배추를 심고 어슴푸레할 때 고추를 따지. 따면서 고 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6411번 버스를 떠올리는 거지. 새벽 4시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을 청소하러 가는 신도림 아주머니를 생각하는 거지.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보듬어야하는 이 가난한 연대. 이 헐거운 연대처럼 힘없이 와있는 가을에 대해 생각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