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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Aug 19. 2018

농부 통신 129

아직까지 새벽은 농부의 시간

아직까지 새벽은 농부의 시간. 입추 지나고 말복 지나자 거짓말처럼 선선해졌어도 한낮은 아직 땡볕. 살아남자면 볕을 피해야지. 잠든 아이의 이마를 짚은 뒤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는다.


날이 밝자면 아직도 한 시간. 밤이 길어져서 다섯시에도 세상은 희끄무레한데 종태할배는 벌써 밭머리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네. 하마 나오셨니껴. 뜨겁기 전에 뭐라도 하자면 안나올 수 있나 날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그러게요. 어지간해야 말이지요. 폭염이 한달. 폭군의 폭정이야 세상을 버리거나 활빈도가 되어 피한다지만 폭염은 피할 수 없는 가렴주구. 옥수수는 잎이 마르고 콩꼬투리는 오그라붙었지. 무는 싹이 안나고 단호박은 아예 접었는데.


거둘 것 없는 빈 들이어도 새벽은 농부의 시간. 어둑어둑할 때 풀을 베고 희끄무레할 때 배추를 심고 어슴푸레할 때 고추를 따지. 따면서 고 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6411번 버스를 떠올리는 거지. 새벽 4시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을 청소하러 가는 신도림 아주머니를 생각하는 거지.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보듬어야하는 이 가난한 연대. 이 헐거운 연대처럼 힘없이 와있는 가을에 대해 생각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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