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부우경 Sep 02. 2018

농부 통신 130

제가 고맙습니다

- 씰랑? 씰랑?

- 신랑은 내가 신랑이고 여기 일하잖아요. 와이프는 신부. 신부는 집에. 하우스.

- 아달아달? 딸딸?

- 아들 하나. 둘 아니고 하나.

 오십 다 된 촌부를 신랑이라고 부를 리 없으니 아내가 있느냐 물은 걸 테고 손가락 한 두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걸 봐선 자식을 묻는 거겠지. 손짓발짓으로 얘기를 나누었으나 서로 알아들었는지는 확인불가.


해마다 품을 사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져서 결국 올해는 외국인 노동자 품을 사서 고추를 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웃는 것으로 일을 부탁하고 커피를 건넬 뿐. 캄보디아에서 이 낯선 나라 외딴 골짜기까지 와 품을 팔아야하는 저간의 사정이야 오죽하랴 싶지만 겨우 알아낸 건 저 아줌마 자식이 셋이고 저 아줌마는 씰랑이 없고 저 아줌마는 딸이 둘이라는 것 정도.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건 저들의 탓이 아니었으되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설움은 고스란히 저들의 몫. 가난한 나라에 얽힌 세계사적 약탈과 학살과 소외를 넘겨짚으려니 일당 8만원이 너무 낯뜨겁다. 미안해요. 그러려던 건 아니지만 고추는 자꾸 붉고 일손은 없고 그래서요. 정말 미안해요.


혼자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었나보다. 참을 먹다 말고 씰랑이 없는 아줌마가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고마씀니다.

아니예요 천만에요 라고 말하려다 못알아들을 것 같아 더 크게 답해주었다.


-제•가•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농부 통신 12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