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자고 짓는 농사에
먹자고 짓는 농사에 쎄가 빠져요 오마니.
장마다운 장마라길래 아침부터 막걸리를 마실까 하던 참에 오마니가 마늘을 캐러가자신다. 비 오는데 마늘을 어떻게 캐요. 오면 관두더라도 안오는 지금 캐잖으면 다 썩는다니깐. 아휴, 가요 가시자구요. 썩는다는데 할 수 없지.
쇠스랑으로 이랑을 뒤집으니 마늘이 드문드문. 그저 식구들 먹자고 짓는 농사라지만 수확하는 재미도 없군. 냉해를 입어 죄 죽고 남은 것도 밤톨만하네. 씨마늘 심어 육쪽마늘을 얻으니 잘해야 여섯배농사인데 이거는 본전치기도 안되겠구나. 오마니, 그냥 사다먹자니까요.
마늘 뿐이랴. 참깨도 분명 먹자고 심었는데 세 마지기 9백평. 6월 땡볕에 밭장만하랴 물줘가며 나흘을 심었더니 몸살이 나더라. 버린다는 수박모종을 얻어 하우스에 심었는데 저 수박을 먹자면 아침마다 수박줄기에 코를 박아야하지. 도대체 1천포기가 넘는 옥수수는 누가 다 먹을 것이며 해마다 먹지도 못하고 얼려서 버리는 고구마는 왜 심는 것이냐구요. 오마니는 말씀하시지.
그러면 농사짓는 집이 참기름을 사먹으랴. 제사 때도 쓰고 명절에도 쓰고 서울이모네며 울산 목포 일가친척 줄 게 없지 줄 데가 없냐.
아이고. 오마니. 먹고 나누려 짓는 농사여도 들어가는 품은 에누리가 없다구요. 당장 날궂이를 해도 션찮을 날씨에 마늘을 캐고 있잖아요.
정 그렇게 일이 귀찮거든 먼저 가그라. 나는 마저 캐고 갈란다.
에잇, 온다는 비는 안오고 감꽃만 지누나. 가만 저게 감꽃이었나 고욤꽃이었나. 하기야 나도 나 먹자고 토마토를 심었지. 토마토에 쏟은 정성을 돈으로 바꿨으면 케첩공장을 차리고도 남았겠지만 저 토마토 아니고는 어림없는 맛, 저 토마토만이 줄 수 있는 들큰한 위안. 저 마늘이며 참깨도 그럴 테지. 인공관절로 무릎을 바꾸고 아픈 허리를 겨우 굽혀 캐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당신 생의 마늘.
마늘을 캐고 돌아오는 길. 비가 후득후득 떨어진다. 오마니는 또 말씀하시지.
하늘이 오늘 진짜 마이 참아주셨네. 아이고 고마우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