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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Apr 17. 2024

이민 말고 귀촌 (1)

하루에 버스가 3대


귀촌 얘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풀기 어려워서, 어떤 얘기를 먼저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민이든 귀촌이든, 떠남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것들은 대개 밥벌이 수단, 정착지, 집 정도일 것이다. 텃세에 관한 경험담이 궁금할 수도 있고, 아이가 있다면 교육까지 고려해야 할 수 있겠다. 뭐, 일반화하지 않더라도 내 경우는 그랬다.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김이 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위 화두를 잠시 제쳐두고 교통 이야기로 포문을 열려한다. 정작 살아 보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드라마 <악귀>를 보았다. 오래간만에 호러 드라마를 보니 생각나서 <손 the Guest>도 다시 정주행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라켓 소년단> 볼 때도 그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볼 때도 그랬다. 주인공들이 툭하면 밤중에 버스를 타고 시골 마을에 들어가고, 대충 일만 보고 곧바로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화가 나면 동행자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그곳에서 떠나는 경우도 있고, 차에서 내려 씩씩대며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드라마 작가들한테 꼭 지적하고 싶은 얘기인데, 시골에는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 이건 시골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타 강사님들처럼 강조, 또 강조한다. 시골에서는 밤중에 버스로 마을에 출입하는  거의 불가능하고, 살인자를 피하려는 게 아닌 이상 목적지 도달 전에 차에서 내리는 건 정말로 멍청한 짓이다.


시골은 정거장 간의 거리가 기본적으로 킬로미터 단위다. 정거장 간 거리가 최소 1킬로미터이고, 차를 타고 3~4분 거리가 수 킬로미터라는 뜻이다. 잠시 내 흑역사를 떠올려 볼까.


귀촌을 하고서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 한 대읍내에 가서 밥을 먹다가 싸움을 벌였다. 싸움을 벌였던 시각이 대충 오후 6시 10분이었다. 젠장할.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 5분 후였는데, 정류장까지 소요 시간이 10분이어서 버스는 탈 생각을 버려야 했다.


걸어서는 4시간이 걸릴 텐데, 어두운 밤중에 인도 없는  지방도 찻길을 혼자 걸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과 함께 가볍게 나온 터라 지갑이 없었다. 돈 한 푼 없으니 숙소는커녕 찜질방도 못 갈 것이었고, 당시에는 친구들이 모두 자차가 없던 터라 부를 사람도 없었다. 택시비는 4만 이 훌쩍 넘을 텐데(이때 기본요금이 아마 2천 원 남짓이었을 것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어차피 지갑이 없어 막바지엔 남편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싸움 후 자존심을 부리고 싶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주차해 둔 오토바이 옆에서 남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날 버리고 갈 상황을 막아야 했다. 엄청 서먹한 상태에서 나는 남편의 허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 사이에 그런 걸 따지느냐고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서럽고 치욕스러웠다. 그때 이후 나는 어딜 나가도 지갑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은 페이가 있어서 핸드폰만 챙겨도 되는 게 행복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재지는 유사(?) 교통의 요지라 읍내는 물론이고 인근 각지로 향하는 버스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우리 마을에는 버스가 하루에 3대 온다. 우리 마을에서 면내까지의 거리는 3킬로미터가 넘고, 오르막이 있어 걸었을 때 소요시간은 3~40분이 걸린다. 가는 길에 그늘도 없고 모기나 날파리는 많아서 화장을 하거나 구두를 신고는 걷기 어려운 길이다.


그뿐이랴. 우리 집에서 읍내까지 차로는 20분가량 걸린다. 그러나 하루 세 번 오는 버스를 타거나 으로 나가 버스를 타면 읍내까지 적어도 50분 정도가 걸린다. 여러 마을을 들르기 때문이다. 즉,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읍내에 가려면 짧게는 50분, 길게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이렇다 보니, 시골에서는 자가 교통수단이 필수이다. 인원수대로 차량이 있어야 그나마 버겁지 않은 생활이 가능하다. 자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중고차를 사주는 집도 적잖다. 어찌 보면 약간 미국 같기도 하다.


처음 귀촌을 할 때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이륜차를 마련했다. 둘 다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난 후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자차에 대한 로망보다 교통체증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다.


도시 사람이라 무지했다. 기본 거리가 수~수십 킬로미터이니 비가 오면 장을 보러 가기 어려웠고, 날이 추우면 원하는 시간에 외출할 수 없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지 못해 마을 길을 둘레둘레 돌아야 했고, 장애물 피하기 게임의 최종 단계 같은 농번기 시골길에서 흙뭉치인 줄 알고 돌을 밟아 휘청거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곡예 운전을 해야 했다. 지금은 차 두 대에 스쿠터 한 대를 두고 있다. 한겨울,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려 스쿠터 손잡이에 초코파이 상자를 씌운 채로 타야 했던 기억도 이제는 아련하다.


이처럼 교통은 시골을 도시와 다른 세상으로 느끼게 한다. 시골과 도시의 문화가 다른 데에는 교통 환경도 한몫을 할 것이다. 국가마다 문화가 다른 이유 중 하나도 교통이지 않나.


과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 우리나라의 일부 산골은 다른 마을과의 왕래가 어려워 발달이 더뎠다. 한 나라 사람인데도 시골에서 자랐다면 아예 모르는 상식이나 매체가 허다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 발달과 더불어 도로 사정이 매우 좋아졌기 때문에 완전히 동떨어져 도태되거나 고유의 상식을 고수하는 지역은 거의 없다. 지역 간 경제적 격차는 다른 국가의 경우보다 클지언정, 지역 간 인식의 격차는 크게 준 것이다.


그럼에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차이 때문에 내가 제목에서 이민과 귀촌을 병렬 배치하였다. 문화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벽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낮고 옅어 난도 낮은 해외 생활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시골이라 판단했던 거다. 내가 교통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 시골과 도시의 차이는 이러하다.


시골 거주자들은 대개 자차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보통 생활 반경이 넓다. 점심은 A 도시에서 먹고 저녁은 B 도시에서 먹는 일이 흔하다. 이는 인구밀도로 인해 거리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다른 지역에 간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비교적 적다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서울이나 부산에 살 때는 필요한 모든 것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기에 다른 어떤 지역에 관광지나 명소가 없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그곳에 가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 도시의 관광지와 명소 외에도 내가 사는 소도시에 없는 인프라를 알고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성심당 빵을 사기 위해 대전에 간다면 그 김에 트레이더스에 들르거나, 공연을 보거나, 폴 바셋에 갈 것이다. 이렇게 여러 목적에 따라 이동의 효율을 높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간다는 심리적 부담감 적다.


교통체증이 없다는 것도 또 한 가지 이유이다. 서울에 살 땐 경기도에서 약속을 잡는 일조차 흔치 않았다. 솔직히 교통체증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방교통체증이 거의 없다. 다른 시도로 나갈 때 정체 구역 없이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다. 예컨대 휴일에 집에서 놀다가 드라이브나 할까, 하며 상주(내가 사는 도시가 아니다) 경천섬에서 산책을 하고 대전 성심당에 가서 빵을 사는 게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랄까(다시 말하지만 우리 집은 경북이다).


전시, 공연, 유행 등, 최신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밤중에 슬리퍼 끌고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도 어렵다. 나는 시골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마을에는 하루에 버스가 세 대 온다. 하지만 이곳은 이곳 나름대로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풍요롭다.


난 그런 곳에서 못 살아.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달빛 별빛 아래의 산책. 고라니와 멧돼지만 안 만나면 도로가 전부 내 것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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