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는 저승에서 무한히 큰 돌을 굴려 큰 언덕 위로 올려야 했다. 그가 무용한 일을 반복적으로 해 내는 벌을 받게 된 이유가 나그네들을 죽여서인지 아니면 신들의 비밀을 폭로해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받는 벌의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흙마당 있는 집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 미루지 않겠다. 귀촌을 얘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오늘의 이야기는 제초다.
귀촌을 처음 꿈꿨을 때, 아니, 구상할 때까지 나는 잔디밭이 펼쳐진 전원주택을 상상했다. 시멘트 바닥의 전형적인 시골집은 내 미래가 아니라 여겼다. 어리석었다. 시멘트 바닥은 현대 문명의 이기다. 잔디는 어리석은 허영에 불과하다.
풀은 정말로 빠르게 자란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다. 비 온 뒤에 죽순이 훌쩍 큰다는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1시간에 20cm 크는 죽순도 있단다. 풀도 만만치가 않다. 잡초의 생명력은 엄청나다.
처음에는 잡초를 뽑았다. 뿌리째 뽑는 게 상식 아닌가. 시골의 마당은 보통 몇십 평이면 아주 작은 규모다. 부유한 저택이 아니라도 그렇다. 내가 귀촌 후 살았던 첫 집, 두 번째 집 모두 잔디밭 마당이 있었다. 두 번째 집의 경우 마당만 이백 평이 넘었다. 종일 풀을 뽑아도 10분의 1 처리가 될까 말까였다. 그래, 그렇게 매일 해서 열흘간 다 뽑았다고 치자. 시골에서는 숲에서 숲으로 부는 바람 타고 수많은 잡초 씨앗이 이동한다. 산새나 벌, 벌레 타고 이동하는 녀석도 적잖다. 열흘이면 첫날 작업했던 곳에는 또 새로운 잡초가 손가락 두세 마디 정도 자라 있을 거다. 난 그 일을 또 반복해야 한다.
때려치워! 곧장 달려 나가 정원용 가위를 샀다. 멋지게 찰칵찰칵 하기만 하면 만사 쉬울 줄 알았다. 시골의 잡초 중 40퍼센트는 덩굴이다. 정원용 가위는 덩굴의 수액과 거친 껍질에 금세 날이 무뎌진다. 파이프 담배만 물면 뽀빠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굳은살이 배기는 건 덤이다.
다음의 선택은 낫이었다. 내 생에 낫 사는 날이 올 거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낫 휘두르는 기분은 꽤 상큼했다. 무사가 된 듯했다. 과거에는 낫으로 사람 머리도 베었다더니, 정말 못 벨 것이 없었다. 힘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조경용 가위나 낫은 뿌리를 뽑지 않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의도치 않은 채찍질이 되어 잡초의 성장 속도를 가속할 뿐만 아니라, 더 굵은 뿌리를 내리고 더 탄탄하게 자리 잡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낫질에 취해 털실 두께였던 등나무 줄기를 결국 팔뚝만 한 굵기로 키워냈다. 그래, 그건 제거하는 게 아니라 키우는 거였다...
제초기를 왜 쓰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제초기를 쓰기엔 돌이 너무 많았다. 우리 집 주위에서 온갖 새, 동물, 벌레가 하루에도 온갖 것들을 물고 나른다. 비가 오면 비탈에서 굴러내려오는 것들도 많다. 돌 맞고 쓰러지면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의외로 안전제일주의자다.
농약도 마찬가지.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처리해야 할 대상에는 말 그대로 잡초도 있지만, 덩굴 부류의 잡초도 있고, 뿌리식물도 있다. 한 종류 농약으로 모든 잡초를 처리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독한 약을 뿌려 내 집 마당에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기 찝찝해지는 것도 싫었다.
일주일간 땀 흘려 집 주위 풀을 베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단 일주일 만에 우리 집 주위는 밀림이 된다. 그게 싫다면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 뿌리째 뽑으면 된다. 그러면 시간을 일이주일 정도 벌 수 있다.
그제야 나는 정답을 이해했다. 여느 시골집의 촌스러운 시멘트 바닥은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자갈은 주차나 청소 때문에 별로다. 현무암은 잘 깨진다. 사람은 꼭 직접 겪어야 안다.
지금 나는 시멘트 바닥에 화단이 앞뒤로 있는 집에 산다. 화단 제초와 마당 경계 제초만 해도 사실 버겁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 정도까진 감당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정원 안 꾸미면 안 되는 지역도 적잖다는데, 제초 정도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