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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May 29. 2024

이민 말고 귀촌 (7)

벌레천국 바퀴지옥

야외로 나가면 수많은 종류의 벌레를 맞닥뜨리게 된다. 벌레 공포증 때문에 캠핑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시골에 산다고 했을 때 벌레 걱정을 하는 사람도 적잖다. 솔직히 말하겠다. 시골은 정말로 벌레 천국이다.


처음 귀촌했던 곳에서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지난 이십 하고도 N년간 보아 온 무당벌레를 모두 합친 것의 수백 배에 달하는 무당벌레를 보았다. 집안에 동그란 게 있으면 무당벌레였고, 벌건 자국이 있으면 무당벌레였으며, 갑자기 무언가가 날아와 내 이마를 때리면 무당벌레였다.


그곳에서 맞았던 첫 봄에는 시골살이의 설렘을 안고 뒤뜰에서 감자와 가지를 세 뿌리씩 길렀다(아무도 모를 정도로만 키울 심산이었다). 감자 잎사귀 한 장에 그만큼 많은 수의 무당벌레가 옹기종기 모일 줄은 몰랐다. 그때 키웠던 감자는 무당벌레 아파트였다.


남자들이 군대 다녀온 후 전설처럼 읊조린다는 공룡 크기의 까마귀주먹보다 큰 말벌도 그곳에서 보았다. 앗, 이거 말벌 아니야? 하면 말벌이 아니, 보는 순간 아, 이게 말벌이지, 하면 말벌이라는 그 말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보는 순간 내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꼈달까. 시골은 온갖 게 다 컸다. 나방도 웬만한 사내 손바닥 만했고, 지렁이도 뱀 같았다. 물론 뱀 역시 흔히 는데, 뱀을 보고 나면 지렁이는 지렁이 사이즈(커버 사진이 2주 전쯤 본 살모사다).


두 번째로 살았던 산골에서는 정말 온갖 것을 다 봤다. 여름밤에는 집 앞 개울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녔고(정말 청정 계곡이었다), 집 내부에는 툭하면 돈벌레라는 별칭을 가진 그리마가 출몰했다. 지대가 높아 서늘한 데다 산그늘 때문에 해가 일찍 지는 탓에 내부에 볕이 오래 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대신 그 집에선 에어컨 틀 일이 없었다. 워낙 선선해서 모기가 없더라).


밤이 되면 바깥 풍경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모기장에 모기를 제외한 온갖 날벌레가 들러붙었다. 집안에서 풍뎅이나 사마귀 보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다. 풍뎅이의 종류가 그리 많다는 것도 그 집에 살면서 알았다. 노린재는 매너 없는 이웃이었다. 말도 없이 들어오시면 냄새 풍기시기 전에 조심스레 밖으로 던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벌레다. 다른 벌레와 달리 이건 조금도 혐오감이 들지 않았고 그저 신기했다.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 주인공 뉴트가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피켓이란 캐릭터가 바로 그 대벌레 모티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벌레를 처음 본 건 영화 개봉 한참 전이라서 나는 처음에 정말 신묘한 생명체를 본 기분이었다. 갓 순이 올라온 초록색 나뭇가지 같았는데, 너무 신기해서 아이처럼 풀에 얹어 놓고 이리 옮겼다가 저리 옮기길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시골 살이 경험이 쌓일수록 벌레 퇴치 요령도 생겼고, 무던해지기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출몰한 노래기에 또 오랜만에 질색했다. 여름 내도록 테라스에 나타나 정말로 곤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테라스에 앉아 먼산을 보는 게 일상인데, 노래기 때문에 어름엔 그 즐거움을 놓쳤다.


이렇게 시골 생활에서 벌레는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흔하고 일상적인 존재이다. 벌레 때문에 시골에 살 자신이 없다는 말도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이건 몰랐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바퀴벌레를 보기 힘들다.



시골에서 살았던 세 곳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바퀴벌레 문제를 겪지 않았다. 물론 이사 초기마다 바퀴벌레 약을 한 번 설치하기는 했다. 도시 사람의 쓸데없는 걱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라 해도 그 한 번으로 수년간 바퀴벌레 볼 일이 없다.


내가 살았던 집들에 항상 창고 같은 곳이 있었기 때문일지는 모른다. 음식물 쓰레기를 마당 나무의 거름으로 줘서 의도치 않은 유인책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시골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인간이 사는 집보다 더 안전하고 쾌적한 곳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나는 실내에서 무당벌레, 갖은 종류의 풍뎅이, 나방, 벌, 말벌, 나비, 그리마, 노린재, 집게벌레, 사마귀, 심지어 지렁이(첫 집이 흙집이었다)까지 보았으나, 아직 바퀴벌레는 본 적이 없다.


특정 생물을 혐오하는 게 부끄러운 태도란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세스코 없던 시절 도시에서 나고 자란 걸 변명으로 삼고 고백한다. 나는 영악하기 그지없는 바퀴벌레를 혐오한다. 대만의 지우펀에서도 계단에 즐비한 바퀴벌레 때문에 홍등이 켜진 아름다운 풍경을 서둘러 떠난 적이 있다. 바퀴벌레는 정말로 싫다. 싫다. 아, 상상만 해도 싫어. 웬만해서는 집안에 출몰한 벌레를 죽이지 않고 방생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바퀴벌레에 대한 이 혐오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오늘도 얘기한다. 그래서 나는 시골이 좋다. 온갖 벌레와 살 부대낀다 해도, 바퀴벌레 없는 이곳이 천국이다.


(...? 왜 결말이 이렇게 되었지?)


이 녀석은 두 번째 집 창고 계단에서 수차례 마주치며 이름 붙여준 사마길. 잠자리 드시던 모습을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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