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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May 22. 2024

이민 말고 귀촌 (6)

주차비가 뭐예요?

오늘은 시골에서의 자동차 이야기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귀촌을 하고서 세 군데 지역에서 거주했다. 첫 번째 지역은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의 농촌이었다. 하지만 그땐 오토바이를 탈 때여서 시골의 자동차 문화를 느낄 기회가 없었다. 두 번째 지역은 산골이었다. 거긴 법률상 도서산간이 아니어도 실질적으로 도서산간이라 할 만한 오지였다. 택배 차량이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곳이었으니(나중에 기사님이 바뀌고 나서 일주일에 두 번 와 주시기는 했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 그래서 애초에 다른 차량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지금 사는 지역에 오고 나서 나는 솔직히 감동했다. 이게 시골이지 싶었다. 우선 이곳에는 수도권 같은 교통 정체가 없다. 가까운 시내나 읍내에서 거북이걸음을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체구간을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5분을 넘지 않는다. 부산과 서울을 합쳐 도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던 나는 교통정체 없는 드라이브가 늘 새롭고 짜릿하다. 지방도나 국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탈 때면 혼자 낭만에 취해 20년 전 광고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찍기도 한다. 머리칼을 휘날리는 바람, 텅 빈 도로, 출퇴근 과정에서조차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다(물론 출발 전엔 그렇지 않다).


그뿐이랴. 여기 사람들은 경적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차 뒤에 코를 박는 일도 없다. 도로에서 앞차가 비상등을 켜고 멈추면 뒤 차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 몇 분이 넘어가면 경적 대신 알아서 피해 간다.


남편은 처음에 답답해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차를 멈추고 사람을 태우거나 물건을 싣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주차장이나 갓길에 차를 대면 되잖아." 하지만 차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이 구부정한 할머니 할아버지인 걸 보고, 물건을 싣는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차에 인사치레하는 것을 보고, 남편도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열중 아홉이 아니라 백중 아흔다섯이 그렇게 여유로웠다. 그렇게 서로 양해 구하고 이해하는 게 사람 사는 거다 싶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조바심 내며 살아왔나 싶었다.


시골은 주차도 편하다. 대형마트나 영화관 등에 주차비를 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읍내, 시장 근처, 번화가 도로변에 차량이 가득 주차된 것은 사실이지만, 4~5분 걸을 생각만 하면 주차할 곳은 차고 넘친다. 무료 공영주차장이 많고, 관공서나 마트 주차장에도 대개 자리가 있다. 다만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은 예외다. 대부분의 소도시 기차역 및 터미널 근처는 주차장 만석에 노변도 꽉 차 주차가 어렵다(서울 소재 대형병원에 가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 이런 곳에 주차하기를 원하는 경우 현지인에게 조언을 얻는 것이 좋다.


시골의 자동차 문화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음주 운전이다. 농번기가 되면 이따금 이상하게 비틀대는 차량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허투루 운전하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음주 운전이다. 그런 차량은 무서워서 뒤따르기도 어렵고 추월하기도 어렵다. 음주 단속이 강화되었고, 음주 운전에 대한 인식도 예전보다 강화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술 한두 잔 가지고 수선 떤다고 생각하시는 어른들이 있다. 계속 나아지겠지, 그리 믿을 수밖에 없다.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같은 동물도 의외의 복병이다. 작은 팔뚝만 한 너구리도 치면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차 상하는 거, 동물 다치는 거, 그런 거 다 둘째 치더라도, 갑자기 동물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기라도 할까 봐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두렵다. 살짝 부딪쳤는지 사라지기라도 했으면 더 당혹스럽다. 나는 아직도 어느 밤 깜짝 놀라 급정지하던 내 차와 부딪치고 곧바로 도로에서 사라진 그 너구리 한 마리를 종종 떠올린다. 환생이라는 게 있다면 업보라며 너구리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 멧돼지나 고라니를 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친다고 해서 차량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뱀과 개구리도 생각보다 운전을 어렵게 한다. 가끔 뭔가를 밟을 땐 마음이 좋지 않다. 심지어 사마귀 밟은 날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 작은 형태를 인식하던 순간 나는 영화의 클로즈업처럼 앞 발 들고 나를 노려보던 사마귀 얼굴까지 동시에 보다. 방금 수컷 머리 뜯어먹은 암컷일 거라고 되뇌었지만, 그날은 종일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그거 다 피해서 운전하는 건 불가능하다.


운전자 고령화도 걱정스러운 점 중 하나다. 시골은 대중교통이 부족해 고령자도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다. 여유로운 태도로 안전 운전하시는 분들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성격 급한 수십 년 운전 경력의 어르신 일부는 전방 주의 의무에 태만하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시골에서 운전하면서 안전거리는 필수로 지킨다. 안전거리를 지키니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주차는 무료 공영주차장에 하고 읍내에서는 걸어 다닌다. 이곳 사람들이 여유롭게 운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점도 장점도 모두 한 덩어리다.


한산한 도로에서 먼 풍경을 즐기며 운전하다 원하는 곳에 편하게 주차할 수 있는 시골에서는 수십 킬로미터를 운전해도 아무렇지 않은데, 도시에서는 몇 킬로미터만 운전해도 피곤하다. 오버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변명하겠다. 나는 시골에서 살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


이런 하늘을 매일 봐야만 하는 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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