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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Aug 17. 2023

40 먹고 어릴 적 꿈을 이뤘습니다.

시간동반자의 일기장 #2

  "저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7살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만화를 보는 것, 그리는 것 모두 좋아했습니다.

내 취향의 그림체로 그려진 만화를 스크랩하고 게임잡지에 멋진 캐릭터나 삽화가 있으면 오려 모으기도 했죠.

그 스크랩북은 제 보물 1호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여러 번 이사로 분실되어 없습니다.

지금도 아이들과 애니메이션 보러 극장 가고 게임 캐릭터 이야기도 하는 등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쭉 잇고 있지요.

 꿈은 만화가였지만, 대학교는 컴퓨터 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왜냐고요?

현실의 벽을 간접 경험 하고 난 뒤, 생각을 바꿨습니다.

꿈보다는 생존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제가 살던 동네에는 드로잉 학원이라고는 미대 입시학원뿐이었습니다.

만화 학원은 서울 정도에 몇 군데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린 학생이 왔다 갔다 할 만 거리도 아니었고,

학원비도 상당해서 부모님께는 이야기조차 못 꺼냈죠.


 좀 더 길게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재수를 해서 99학번입니다.

한창 재수학원에 다닐 때, 98학번인 고교 동창이 자신의 학교 선배 한 명을 소개해줬습니다.

정식 소개 자리는 아니었고, '선배랑 술 먹는데 올래?' 이런 거였죠.

저의 꿈이 뭔지 아는 친구는 한 선배가 술자리 나오면 항상 저를 오라고 불렀습니다.

이유인즉슨, 그 선배는 바로 '만화가'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허접하죠? 오랫만에 그렸더니 쑥스럽네요.

 술도 잘 못 마시는 제가 그 자리에 참석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기 위한 현실 조언, 리얼 만화가의 삶 그런 걸 기대했죠.

그래서 그 선배가 나오는 술자리는 거의 참석했습니다.

아는 친구라곤 제 동창 한 명뿐이었고 다들 그 학교 학생들 모임자리인데도 불구하고요. 불청객의 입장이 될 수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친구의 지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만화가로서 선배의 삶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선배는 술자리에서 매번 만화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 지를 토로했어요.

선배와 동기인 다른 만화가도 마찬가지.

그때 당시만 해도 만화가는 배고픈 직업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만화플랫폼이 많았다면, 상황은 다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때는 인터넷이 보급된 지 3년밖에 안됬었고, 칼라폰이 갓 나왔을 때였으니까요. 정말 유명한 만화가가 아니면 배고픈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술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술집 앞에서 담배 피우던 두 선배들 진한 연기를 내뿜으며,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해놓은 건 없고, 만화가 돈은 안되고.. 하.. 모르겠다."

라며 힘들다고 우는 그의 모습을 봐버렸습니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28살이었어요.

28살 하면  창창할 나이일 텐데 현실적인 압박이 그만큼 컸던 거겠죠. 여러모로.

얼핏 듣기론 생활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게 다 힘들고 힘겨워보였던 선배여서 종종 생각납니다.

21살이었던 저의 눈에는 '28살은 많은 나이고, 무언가를 이뤄놓아야 할 나이구나'라는 것 등등 많은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마주할 현실이 오기도 전에 만화가라는 꿈을 미. 리. 접었습니다. 슬프게도요.


44살, 꿈을 이루다.



 만화에 대한  갈망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노트나 연습장 한켠에는 항상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특히 막내가 절 닮았는지 그림에 소질도 있고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둘째까지는 그림 그려주며 노는 일이 드물었는데, 막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덕에 같이 그림도 그리고

스케치북에 제가 그린 공주님 그림으로 색칠놀이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속에 감춰놓고 까먹었던 '그리기'의 열망이 올라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두번째 캐릭터


 그래서 그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살 이후로 24년 만이네요.

꽂히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어디 안 가더군요. 포토샵으로 그리다 마우스로는 한계가 있어 저렴한 드로잉 패드를 삽니다.

검색의 꼬리의 꼬리는 저에게 이모티콘, OGQ네이버라는 것을 통해 그림에서 수익창출하는 장이 있다는 걸 알려줬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 사랑해요.)

배움의 갈증이 높아지고 있는 저는 클래스유라는 인강 어플에서 드로잉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진짜 좋아졌어요.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 할 게 없습니다.

집에서 패드로 인강을 듣고 드로잉을 배우고 있다니!!!

꿈만 같았어요. 어릴 적 제가 그리 배우고픈 걸 편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게 진짜 감격이었습니다.


이모티콘 작가가 되겠다는 꿈으로 재설정



10대 때 만화가의 꿈을,  40대에 와서 만화 등 캐 이모티콘 작가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설정을 해본 거죠.

독학으로는 힘들어 클래스유라는 곳에서 1달짜리 강의를 듣고 심사까지 넣었습니다.

접수 -> 심사 -> 반려 -> 재정비 -> 재접수 -> 승인까지 3달은 걸린 것 같아요.

이 과정은 그저 재미의 연속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자체가 정말 신나고 흥분되었으니까요.



2번째까지 기대를 엄청했다가 낙방으로 무기력증까지 왔었습니다.

도전 3번째 발표전에는 '이번에도 떨어지면, 아예 갈아엎자'라는 결심까지 했어요.

왜냐면 심사반려로 통과가 안되면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투자가 헛수고인듯한 느낌이 들어 무기력감에 멘털이 끙끙 앓았거든요.

나이를 먹으면 근육은 점점 빠지듯  멘털의 근육도 같이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8월 14일

드디어 네이버 OGQ 스튜디오에서 스티커 승인이 났습니다.

결과를 보자마자 안 믿겨서 어리둥절했어요.

신랑은 연신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새벽 2~3시까지 강의 듣고, 애들 등교시키고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림 그리고 , 연습하는 걸 아는 사람이니까요.


좋아하는 것을 실현시킨 것.

좋아하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

꿈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 저에게는 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아들 셋에게도 엄마가 이루어냈다고 자랑도 하고, 실패담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번 결과를 시작으로

계속 도전을 해볼 생각입니다.



꿈에는 나이가 필요 없습니다.

열정과 실천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 줄 건강만 있다면 이뤄 낼 수 있습니다.

꿈을 꾸세요! 그리고 행동을 통해서 앞으로 나가세요.

스스로에게 응원을 하고 긍정 확언을 외치세요.

어느 날인가 이룬 자신을 만날 것입니다.  


 - 8월 14일 40대 네이버 스티커 작가가 되다. -


스마트한 시대입니다.

좋아하는 것,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배움의 경로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작품, 배우고 싶은 강좌 등등

스마트폰 하나면 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무료든, 유료든

시간, 장소 구애받을 일이 없습니다.


꿈과 열정 그리고 실천만 하세요.

나이는 상관없어요.

행동으로만 옮기면 됩니다.

지금 세상에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시간 핑계 절대 안되요!

하세요. 그냥 하세요.


삼쉭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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