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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돈

'그 돈이면'이라는 단어

by 루로우

학생을 8명 이상 과외를 하면서 대학생치고는 꽤 많이 돈을 많이 벌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 거창하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가자는 목표를 세우고는 2019년 8월에는 제주도, 9월, 10월, 12월에 모두 해외여행을 떠났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졸업한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친구가 혼자 도쿄 여행을 갈 거라고 하자,


"어? 그럼 같이 가자. 요즘 엔화도 비행기도 싼데"


라고 나도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을 꺼냈다. 비수기라 그런지 주말을 포함해서 가는데도 왕복 15만 원도 안 되는 정말 괜찮은 가격이었다. 점점 나이도 들어가고 친구들도 하나둘 취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모처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음악을 했었지만 지금은 하고 있지 않다. 우연찮게 최근 집 근처에 있는 음악작업실 홍보를 당근마켓 어플에서 보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여행을 가면 적어도 70~100만 원 정도는 쓸 텐데...'


여행 비용으로 3달, 4달 정도는 잃어버렸던, 잠시 놓아두었던 내 꿈에 다시 투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문득 여행을 다니며 돈을 물 쓰듯이 써재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은 돈들이 나의 기호에 의해 사용되면서 내게 지금 무엇이 남겨진 걸까.


물론 여행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는 젊은 시절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여러 건축물들을 보고 건축에 대한 인사이트를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요즘 베스트셀러로 한창 인기인 세이노의 말대로 '여행은 사치고 20-30대 때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라. 20대 때 여행에 쓴 100만 원은 나중에 그저 사진 몇 장이 되고 20대 때 모아둔 100만 원은 나중에 1억 원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라는 말도 있다.


떠나자고 말하는 친구만 있어도, 떠날 수 있는 사람만 있어도 신나서 ‘가자!’고 소리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돈이면', '그 시간이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저축과 여유 문제를 떠나서 여행이 왜인지 망설여진다.




9월의 신주쿠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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