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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짜리 고민

by 루로우

요즘 들어서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 나는 학교 수업 커리큘럼으로 인해 수업을 하나만 듣고 있다. 졸업을 위한 남은 학점이 12학점인데 커리큘럼 순서 때문에 무려 3학기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사실 전공을 잘 할 생각도 없어 그마저도 제대로 안 듣고 있는 대신, 생계유지 때문에 과외를 주구장창 하고 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세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학부에 입학한 이후 거의 7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사실상 커리어와는 무관한 용돈벌이이고 언제까지 과외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 '이제 슬슬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솔솔 신기하게도 든다.




얼마 전 학과 교수님과 면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4학년이 아니라 5학년임에도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여유가 되고 뭔가 잡히는 꿈이나 희망이 없을 때, 사람이라도 만나자고 생각했다.


"주변 동기들은 모두 대기업, 설계사무소 등을 갈 때 아직도 학부생인 게 불안합니다."라고 내가 고민을 토론하자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길,






"너가 지금 하는 고민은 정~말 길어봤자 20년짜리 고민이야."






80살, 90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지금 몇 년 늦는 것이 과연 80년 인생에 비하면 뭐 얼마나 늦는다고 남을 의식하냐고. 지금 문제(남들이 하니까,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영부영 취직의 길을 밟으면 길어봤자 30년 후, 혹은 일이 맞지 않아 더 일찍 퇴직하면 다시 똑같은 고민을 할 거라고.


자기 주변만 봐도 대기업을 갔든 사무소를 갔든 어떤 업을 평생 해오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 케이스고 모두 다 하는 일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내가 너에게 어떤 길이 좋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하도 케이스가 너무 많아서 정답이라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무의미해."


자기는 우연히 밟은 설계라는 길이 운 좋게 잘 맞아서 계속 걸어갔을 뿐이고, 그렇다면 내가 굶어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마인드로 내가 평생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돌이켜보니 어쩌면 내가 과외를 하고 있는 것도,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잘 계시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 덕분에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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