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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자퇴지만 수업은 듣겠습니다

전공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by 루로우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지속되는 요즘. 난 학사 과정 하나 졸업할 역량이 없는 인간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 한 교수님이 ”할 거면 제대로 해“라고 한 말에 열심히 해보려고도 했으나, 꾸역꾸역 이번 학기도 전공 수업을 기말 발표까지 들은 지금도 여전히 설계와 크리틱은 정이 안 간다.


설계가 재미없다기보다는 ’이런 걸 논의해서, 이런 걸 잘해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적성에 안 맞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르치는 과외생들 중에서도 분명 부모님 등 세상의 타의로 인해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을 텐데, '하다 보면 재미가 생긴다 열심히 해라'라며 훈계하듯 어른이라도 되는 마냥 했던 말들도 반성하기도 하고...


그 와중 친구들은 다 설계사무소에 있으니 술을 마시며 그쪽 업계 이야기들만 하게 되고, 들으며 낄낄거리던 내 모습이 마치 야구 룰도 모르면서 야구팀 팬덤끼리 싸우는 밈을 보고 낄낄대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이도 나이고 내 주변은 모두 졸업한 상황에서, 소속감과 외로움 때문에 전공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쥐고만 있었던 것 같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전공을 안 하겠다고 이야기하면


"어... 그래?"


라며 냉담한 눈으로 이젠 볼 일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볼까 봐서였다. 애초에 과제물 자체에서부터 그런 마음이 드러날 테니 그게 두려워서 수업을 안 듣고 졸업을 한참 동안 유예했던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예체능을 준비하려고 하는 학생이 선생님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모두 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교수님들이 또 설계를 종용한 것도 아니다. 작년에 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고." 나는 이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받아들였는데, 뒤에 있는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도 동등한 무게, 용기가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내 오랜 친구가 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몇몇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용기를 얻기도 했다. 꼭 세상에는 불어불문학과를 나온 모든 사람들이 프랑스어 관련 일과 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는 한 전공이 정말 좋아서 들어간 것일 수도 있지만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과연 학사모를 던질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지금 졸업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냥 학사모를 던지며 찍은 졸업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길은 대체로 졸업장과 관련이 없다. 옛날에는 어린 마음에 목표를 자퇴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목표는 자퇴이되 수업은 듣겠다는 마인드를 가지려고 한다.


이것도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이 부디 나처럼 전공이 안 맞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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