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대하는 자세

매너 있게 이별 하나요?

by 힐링작업소

그녀의 연애담은 소설급이다. 탄탄한 스토리로 엮어진 장편이 아닌 끊기지 않는 허술하고 짧막한 단편 연재 소설이랄까. 끊임없는 연애를 이어가느라 아직 결혼도 못했으며 아니 안했으며 그녀가 조용할 때면 목하 열애중이고 우리 앞에 나타나면 이별을 했거나 이별을 준비중인거다. 그런 그녀에게서 점심 즈음 전화가 왔다. 바쁜 와중이라 길게 만날 수 없음을 사전 통보하고 만난 자리.. 그녀가 날 찾아온 이유는 역시 이별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하소연을 종합하자면 정말 맘에 드는 썸남이 계셨고, 한 치의 의심없이 잘 되리라 믿었는데 어느날부터 연락이 없더라는거다. 그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며 울먹이는 연애초보자 보다도 못한 이건 또 뭐니?? 너 연애고수 맞아? 너의 기막힌 연애담으로 나 소설을 쓸까도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지금 그걸 나한테 물어?”

“연락을 하는 게 좋을까” “안 했어?” “못했어. 헤어지자고 할까봐.. 톡은 했고 봤는데 답이 없어” “전화를 하지””처음엔 자존심 상해서 안하다 며칠 더 기다려보자 하다가…” “어떤 사람이길래””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도 성도 성격도 모르는 사람인데 뭐라 할말은 없었지만 나라면 어찌 했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는 일을 핑계로 다음을 약속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원고와 큐시트 정리에 잊고 있던 그녀의 일이 집에 오니 생각났다. 그녀의 어이없는 초보 수준의 연애 넋두리를 떠올리며 나도 내 이별사를 더듬어본다.


누군가에게 받은 단체문자를 토스하는 무성의가 싫어서.. 트로트를 좋아해서.. 애정 표현이 성에 안 차서.. 그가 딴 사람한테 마음이 가서..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과 헤어진 이유다. 사소한 말, 행동, 고쳐지지 않는 이기심으로 인해 어긋나기 시작하고, 한 번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하다가 결국엔 안 보는 게 나은 상황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든 정확하게 이유를 동봉한 이별을 통보했다. 그에 비해 상대들은 모두 내 마음 같진 않았다. ‘넌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 안 맞아’ 라는 거의 자기 기만에 가까운 이별의 이유에 어이없었지만 가장 저급한 인간은 “이따 전화할게~”해놓고 이년째 연락없는 그 놈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그녀보다 훨씬 전에 당했던 일이다. 연락을 두절하는 자세를 비난하는 것은 남은 상대에게 고통의 시간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이별을 맞아야 하는 고통도 만만치 않은데, 이유를 추론하는 시간까지 길어진다. 그 시간을 룰루랄라 웃으며 밥만 잘 먹더라는 절대 되지 않기 때문에 연락두절이나 잠수는 아주 고약한 것이다. 어떻게든 만나려고 온갖 애를 쓰던 성의처럼 이별도 매너 있게, 성의 있게 하는 것이 옳다.


바빠서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그녀에게 미안해져 톡을 남겼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금줄 잡아보니 썩은 동아줄이라는거 몰라? 그냥 천장을 보고 나쁜 놈 하나, 나쁜 놈 둘, 나쁜 놈 셋.. 외우면서 잠이나 자>라고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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