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만 되면 없는 여자
내 나이 50줄. 그러므로 50번이 넘게 스쳐간 10월의 마지막 날 밤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기억력을 탈탈 털어봐도 한 두해쯤 생각나는 10월 마지막 날 밤이 없다. 남들이 떠들어 대고, 여기저기서 소란을 피우는 날일 뿐이다. 난 그토록 좋아하는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다. 잘 만나다가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질 때면 어느새 헤어진 연인이 되어 있었고, 화이트데이에 만났던 분은 기념일과 담쌓고 사는 분이었다.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다 남의 이야기며 장미꽃, 빼빼로 과자 한 봉지 받아본 적 없고 사실 꼭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10월의 마지막 날 밤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추억으로 남길 만한 에피소드는 공교롭게도 수많은 데이를 비껴간다. 올해도 10월의 마지막 날 밤이라고 수선을 떠는 친구가 한 두명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대답이 마음속에 맴돌았던 오늘.. 10월의 마지막 날 밤을 난 때만 되면 없는 여자임을 상기하며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분명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슬프거나 혹은 즐거웠던 10월의 마지막 날 밤이 있었음을.. 다만 죽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그 이별이 미치게 슬프지 않았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역시 헤어짐에 허덕이며 눈물을 흘리는 대신 난 캐롤이나 듣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 깊이만큼 기억을 남길 것이며 기억하지 못함은 그 만큼 덜 사랑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라는 10월의 마지막 날밤을 만들지 못한건 당연하고, 때만 되면 없는 여자가 된 것도 쌤통일지 모른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을 아쉬워 말고 뜨겁게 사랑할 줄 알고 그래서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