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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Nov 16. 2021

소설: 신월동

-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은 한다. 그곳에서... 

-1 : 여행사


5월의 햇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창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낡은 색상 위 버벅 거리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 망할 놈의 노트북은 태풍이 불어도 꿈적하지 않게 생겨서 켜지는데 80대 노인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지, 가끔은 그 불쾌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이번 여름이 끝나는 어느 날, 거지 같은 그것을 해머로 내리치는 상상에 입 꼬리가 야비하게 실룩거린다. 


‘시간여행’ 빛바랜 페인트로 갈겨쓰듯,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낡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10평 남짓한 이곳이 나의 전부다. 촌스런 저 이름도, 갈겨쓰듯 페인트 칠은 한 것도 

이곳에 온지도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도망치듯. 젠장,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바닥이 베이도록 주먹을 쥐게 된다. 머릿속에 스멀스멀 가려움이 밀려온다. 머리를 언제 감았던가? 기억의 스멀거림인지 두피 속 각질의 스멀거림인지 오늘은 왠지 이 스멀거림을 불려서 밀어버려야겠다. 


목욕 가방이 어디 있더라? 아니지 목욕탕을 언제 갔었지? 다시 한번 스멀거리는 머릿속을 긁적이며 구겨져 있는 편의점 비닐봉지에 여행용 세면도구 하나 넣어 목욕탕으로 향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걸어서 부천으로 목욕탕을 간다는 것이다. 행정구역상 엄연히 나의 주거지는 서울이다. 


“아이고, 사장님! 어디 가세요?” 

20년 된 자동차 머플러에 끼어있는 기름때 같은 목소리. 내가 이 동네를 얼른 뜨던지 해야지. 

“아, 네, 안녕하세요? 목욕탕이요”

“그러세요? 자, 요거 하나 빨면서 다녀오세요’ 

본인 몸통같이 생긴 노란색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건네는 이 사람, 우리 동네 편의점 주인이다. 아마도 여섯 달 전쯤. 그래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편의점에 소주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아저씨? 언제 오픈하셨어요?” 

“네, 오늘 오픈했어요. 12월 25일 성탄절 얼마나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그날, 저도 왔습니다.” 

“얼마예요? “ 

“이 동네 사세요? “ 

“이 동네 사니까 이 차림으로 이 시간에 술 사러 왔겠죠” 

“ 하하하, 재미있으시네, 자주 봅시다. 오늘은 공짜입니다. “ 

160을 겨우 넘는 정도의 키에 비니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촌스러움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푸르스름한 털모자, 휴전선 철조망 끄트머리에 솟아 있는 철 못 같은 수염. 아무리 위아래 스캔을 해 봐도 편의점이랑은 어울리지 않았다. 

“ 아저씨, 이 동네 사람이세요? 

“아니요. 전 안산에 삽니다.” 

안산이라? 족히 차가 막히지 않아도 1시간은 내리밟아야 가는 곳인데, 그곳에서 서울 변두리 신월동에는 무슨 이유로 편의점을 오픈했을까? 아무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늘 실실 웃고 다니는. 


“ 찜질해요?’

“아니요, 목욕만 할 거예요.”

“저기, 아가씨? 천 원 더 내야 하는데?” 

“네? 4천5백 원 아니에요?” 

“오랜만에 왔나 보네. 5,500원으로 오른 지 벌써 반년도 넘었어”  


그렇다면 6개월 동안 한 번도 목욕탕을 가지 않았단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동안 내가 다른 목욕탕을 다녔나? 생각이 없다가도 화장실에 들어가면 배설 욕구에 온몸을 떨 듯 목욕탕 입구에 서니 스멀거림 또한 심하게 올라온다. 


대충 샤워를 끝내고 된장찌개 끓듯 보글거리는 탕에 살포시 발을 담가본다. 20살 때 좋아하던 선배의 스치던 손길에 놀라듯 살갗의 전율이 발끝을 통해 정수리까지 올라온다. 몸을 반쯤 담그고 시원한 냉커피 한 모금 쭉 빨라 올려본다. 젠장, 편의점 아저씨와 오른 천 원의 목욕 값만 아니었으면..


찬 수건을 머리에 말아 올리고 스멀거림을 완전히 날려버리기 위해 사우나로. 

여자 목욕탕 안. 그 속에 사우나는 남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그것들도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가끔은 열기에 목젖이 찢어질 것 같아도 참고 옆자리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곤 한다. 오늘도 앙큼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한다.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어머나, 못 들었구나.” 

“뭔데? 이놈의 아줌마는 무슨 사설이 이렇게 길어? 

“ 있잖아, 요 아래 국과수에서 사람이 하나씩 죽어 나간다네?’ 

“아이고 배야. 하하, 무식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진짜라니까.”

“무식한 미숙 씨, 국과수는요, 잘 들어봐, 원래 죽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데어. 그러니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나오는 게 맞는 거고요. “

“참나, 버스 종점 밥집 아줌마랑 손님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니까” 

“미숙 씨, 시끄럽고요 부항이나 붙여주세요” 


아줌마들의 수다는 블랙 코미디의 그것과 이다. 아참, 우리 동네에는 국과수, 그러니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있다. 아마도 서울의 잘 보이지 않고, 비행장 가깝고 하니 이곳에 만들어 놓은 겄다. 그 덕에 이곳 주민들은 국과수 보기를 동사무소 보듯 한다. 신기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부항 아줌마 말이 맞다. 그곳에서는 죽은 사람의 출입이 가장 자연스러운 곳이니까 말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스무고개를 하는 곳. 


샴푸를 듬뿍 짜서 머리를 여러 번 감는다. 마지막 헹굼을 하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침부터 날 괴롭히던 스멀거림도 마지막 거품과 함께 하수도로 흘러 들어간다. 왠지 승리의 쾌감에 웃고 있는 얼굴. 그만 가자. 


6개월 만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버리고 나왔다. 천 원 더 내고 목욕했지만 나올 때 미안함에 카운터를 외면하고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이모, 밥 좀 주세요” 

“여기에 밥 맡겨 놨나?” 

“에이, 아침부터 왜 그러실까? 오늘 그날 이셔?”

“ 이게 미쳤나? 장부에 외상값 보고 말해라. 내가 니 어미가? 어미래도 이래 놀고먹는 딸년 있으면 쫓아낸다.” 

“이모, 내가 놀고먹는 거는 아니지. 장사가 안될 뿐이지. 그리고 이번 달에 싹 정리해 준다니까”

“밥 좀 줘요. 이모,” 


개나리 색 옷을 입은 핑크 소시지, 탱글탱글 어린아이 엉덩이 같은 어묵볶음, 흰 속살을 드러내며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 그리고 노란 단무지 무침. 이 순간 열정으로 치닫는 그것보다 짜릿하다. 


“근데, 이모. 사우나에서 아줌마들이 이상한 소리 하더라”

“뭐?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 이상한 소리 하는 게 뭐 이상하다고?”

“글쎄 이모가 국과수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손님이랑 이야기하는 걸 들었대” 


‘삐이이이……’ 

민방위 훈련 사이렌 소리보다 심한 소음에 놀라 뒤돌아 보니 

“이모, 괜찮아요?” 

“아이고, 전화기를 바꾸던지 해야지, 툭하면 이래이래 소리가 난다니까” 

“안색이 안 좋아, 이모, 정말 괜찮아요?” 

“시끄럽다. 괜찮으니 니 씨부리는 거 대꾸해주고 있지, 어서 밥이나 쳐 묵어라” 


그 흔한 이름 하나 없는 밥집이다. 간판도, 메뉴도 없는 그저 밥집이다. 그러고 보니 이모 이름도 고향도 아무것도 모른다. 밥맛이 워낙 좋고 외상을 달아줘서 손님은 끊이지 않고 바퀴벌레처럼 버글거린다. 

오늘따라 이모가 이상하다. 분명 내가 한 이야기에 놀라 수화기를 놓친 듯싶은데. 

술에 취한 동네 망나니들도 혼 구멍을 내서 밥값 받는 이모인데 사우나 실없는 아줌마들 수다에 얼굴에 선홍색이 증발해 버렸다. 왜 일까?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오늘이 며칠 이더라? 젠장, 말일은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이번 달에는 가스요금, 전기요금 내야 하는데 이모 밥값도 정리해 줘야 하는데 머릿속 뇌가 물먹은 스펀지로 변하고 있다. 목으로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이번 달 총수입 50만 원. 2호선 라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용돈보다 못한 수치다. 

‘지지 지직, 지지직’ 

이 망할 놈의 노트북은 벌써 퇴근하려 한다. 이제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경을 긁는 ‘끼이이익’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흠뻑 젖은 뇌를 들어 앞을 보니 슈트발 죽여주는 한 남자. 


“어서 오세요, 여행 가시게요?” 

“안녕하십까? 글로벌 여행기업 ‘막가서와’의 한국 마켓 세일즈 담당 김현수라고 합니다.” 

잠시 밥집 이모 말을 빌리자면, ‘뭐라고 씨부리니?” 

“네? 누구시라고요?” 

“이번에 한국시장에 처음 진출하게 된 다국적 여행기업 ‘막가서와”의 한국 담당 김현수입니다.’ 

“아, 네. 앉으세요. 그런데 이런 변두리 여행사에는 무슨 일로?” 

“저희는 한국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것이므로 참신한 파트너를 원합니다” 

이건 뭔 소리지? 참신한? 정신 똑바로 차리자. 6년 전 그날처럼 또 사기당하면 안 되지.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희 회사는 기존의 여행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언제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상품을 구성하고 있으며, 거래처에는 결제도 1년에 2번만 해주시면 됩니다. 거래처 입장에서는 번거로움도 없고, 선불이 아니고 후불이니 사기당할 일 없고” 


알 수 없는 미소로 사람을 홀리는 이 사람은 누구지? 정신이 몽롱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맹장수술을 하러 수술 대위에 누웠는데 충수가 터지는 아픔이 투명 액체에 먹혀 몽롱함으로 나를 짓눌렀던 그날. 지금이 그렇다. 알 수 없는 이 몽롱함에 몸을 가눌 수 없다. 


“ 저희가 제공하는 여행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 창을 열고 접속을 하시면 로그인 화면이 나옵니다. 이때 저희가 부여해 드리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로그인을 하시면 판매 중인 상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손아래 있는 이놈을 깨우는데 족히 5분은 걸렸는데, 이 사람은 손아래 그것을 1분도 안돼 깨운다. 내일 당장 이 놈을 깨 부숴 버려야지. 


“자, 이 안경을 쓰고 화면을 한번 보세요. 마치 3D 영화 같이 내가 여행지에 서 있는 듯 파노라마가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목 아프게 상담하지 마시고 상담도 예약도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자, 이제 스페인으로 떠나 볼까요?” 

“네? 스페인이요?” 

“제가 안경을 씌워 드리죠. 쉼 호흡하고 원, 투, 쓰리” 


나무 마룻바닥을 발로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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