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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Nov 17. 2021

소설: 신월동

-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은 한다. 그곳

- 2: 범인


 “어이, 0889, 드디어 오늘 석방이네?”

“그러게요, 시간 참”

“그래, 나가서 뭐할 거야?” 

“나가서 뭘 하겠어요, 일단 진탕 술 좀 빨고, 그리고 모 그거 있잖아” 

“아, 저 새끼 부럽네, 난 언제 나가나”

“아직 생각 안 해봤습니다.” 


저들은 5년이 벌써라 표현하지만 곱씹고 곱씹어도 씹히지 않고 입안이 다 헐도록 씹어 내린 시간이다. 책상을 정리한다. 5년간 일기 속에 감춰 두었던 그것도 함께. 


2008년 어느 봄날 눈을 떠 보니 나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김철용 씨? 이봐요?” 

“네?”

“지금 이러고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신 때문에 몇 명이 죽은 줄 알아?”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단다. 그것도 2명이나. 


4월인데도 더위가 느껴진다. 등줄기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목은 한겨울 꽁꽁 언 강물에 빠진 듯 시리다. 손목을 감싸고 있는 금속에 온몸이 마비가 된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면 어떻게 해? 어? 너 하나 죽으면 됐지, 왜 멀쩡한 사람까지 죽여?”

“제가 그러니까 제가 말입니까?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 형사. 손가락에 꽂혀 있는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하다. 희뿌연 연기로 마비되어 가는 신경 자락을 깨우고 싶다. 폐 저 깊은 곳까지 빨았다 내뿜으면 이 상황이 사라 지지 않을까?


“형사님, 그 담배 한 모금만” 

“이 새끼 봐라, 네가 피운 향이 몇 개인데, 담배를 피우고 싶으세요?” 

“최형사, 웬만하면 한 개비 물려줘. 오죽하겠어”


입가에 하수구 거품처럼 부글거리는 침을 손으로 닦고 재떨이에 있던 담배꽁초에 불을 붙인다. 

“야? 이거 피고 우리 끝내자” 

속이 뒤틀려 토할 지경이지만 사흘 밤낮 굶은 사람처럼 허둥지둥 담배를 받아 든다. 하수구 냄새에 역하지만 타오르는 담배 연기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최형사님? 국선 변호사 도착했답니다.” 

국선 변호사라, 참으로 형편도 거지 같은 모양이다. 정신 차려야지 

“철용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눈앞이 깜깜하고 이 어미가 죽었다 해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 알았지? “

어머니께서 내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다. 그래 정신, 그거 한번 차려보자. 


“김철용 씨? 지금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음주운전에 중앙선 침범으로 반대 차선 운전자와 탑승자가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박은범 씨도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

“정 변호사님이라고 하셨죠? 혹시 깨끗한 담배 하나 있습니까?”

“네? 담배요?”

“네, 깨끗한 그러니까 새 담배 한 개비만 주실 수 있나요?”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본다. 한 여름 햇살 아래 보송보송하게 마른 이불 홑청처럼 깨끗하다. 

눈앞에 하얀 연기가 사라지니 짙은 뿔테 안경을 코볼까지 내려쓴 이 사람, 국민학교 때 엄마가 라면 받침으로 깔아주시던 전화번호부 마냥 두꺼운 서류뭉치를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넘긴다. 


“그러니까, 김철용 씨는 박은범 씨 대리운전 운전을 했고, 박은범 씨와 단 둘이 탄 것이 아니라 일행이 한 명 더 있었고. 여기까지는 맞죠?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박은범 씨 일행은 차 안에서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네,”

“그리고 뒤 자석에 있던 김은희 씨가 모든 걸 말하겠다고 하고 박은범 씨는 그럼 같이 죽자고 하며 핸들을 마구 흔들었다?”

“네.”

“김철용 씨와 박은범 씨가 핸들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가 김은희 씨가 김철용 씨를 내리 쳤고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

“그리고 눈을 떠보니 차는 중앙선을 넘어 있고 뒤 자석에 있던 김은희 씨는 없고, “

“믿으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그때 손님이 묵직한 걸로 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변호사님? “ 

“네? 그래서요?’

이 사람 내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의 관심사는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디서 걸치고 들어가나. 그리고 이 하찮은 사건 종결짓는 것. 

“제가 어떻게 하면 형을 면할 수 있을까요? 아니,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 

“우발적 사고였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박은범 지갑 속 현금 뭉치를 보고 욕심이 생겼다. 실랑이를 하다가 핸들을 잘 못 꺾어서 사고가 났다. 알았죠?” 

“네, 그렇게 하죠” 

박은범, 김은희. 누굴까? 그들은 왜 싸웠을까? 그리고 김은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이고, 우리 철용이 똑똑 도 하지, 어째 이리 말을 잘하니. 난중에 변호사 하면 잘하겄네” 

할머니가 보고 계실까? 말 한마디 잘 못하는 아니, 바르게 표현하면, 안 하는 변호사 앞에 앉아 있는 범죄자 김철용. 할머니께서 틀리셨다. 어머니도 틀리셨다. 

착한 사람이 복 받고 잘 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교도소에서의 5년. 어머니의 자궁 속에 다시 갇힌 느낌이다. 양수에 숨이 막히고 스스로 먹을 것을 찾지 않아도 공급되고 팔다리 쭉 펼 수 없어 웅크리고. 형벌일까? 축복일까? 

이제 머리를 돌려본다. 아래로 찢기듯 피를 토하며 나갈 준비를 한다. 

분만실 가위소리가 이럴까? 살을 에이는 듯 선명하고 또렷한 금속의 부딪힘. 


“아이고 고생했다. 우리 아들” 

“뭐하러 나와?” 

“나와야지, 내 새끼, 고생하고 나오는데”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부시다. 혼자다. 혼자다 됐다. 찾는다. 찾아야 한다. 박은범, 김은희. 

작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 남기시고. 


“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갑작스레 “ 

“…..”

“ 자식이라곤 너 하나인데, 눈도 못 감으시고 “ 

“ 죄송합니다.” 

“ 너희 어머니 점방은 이미 네 명의로 변경해 놨더라. 그리고 노인네 뭘 그리 숨겨 놨는지” 

“ 네?” 

“ 너 결혼하면 준다고 쌍가락지랑 현금 조금 “ 


손발이 잘려 나갈 듯 추운 겨울.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떠나셨다. 


“ 야, 야, 세상 뭐 있노. 내 새끼 입에 이래 맛난 거 들어가는 거 보는 게 행복 이제 “ 

“ 어머니? 뭐가 그리 좋으세요? 잘 난 것도 없는데” 

“ 아니, 새끼가 자랑거리가? 그저 내 새끼 입에 먹을 거 들어갈 때 난 제일 좋다.” 

“ 철용아? 욕심부리지 마라. 그저 착하게 살아야 한다. “ 

“ 내년엔 꼭 꽃놀이 가요. 엄마 “ 

“ 참말로? 내 새끼가 최고다 “ 


어머니. 이제 꽃놀이 가려고요. 어머니랑 갔으면 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했을 텐데. 

이 번 꽃놀이는 꽃을 꺾어야겠어요. 나비도 잡아야겠어요. 


자, 한번 놀아볼까? 


은둔지가 필요하다. 들키지 않을. 의심받지 않을. 

“여기가 서울에서 제일 싸요. 공항도 근처라 고도 제한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뭐요?”

“그래요. 뭐 이사 오면 다 알 텐데. 이곳에 국과수가 있어서 집값이 올라가질 않아.” 

“국과수요? “ 

“그렇다니까. 뭐 내년에 지방 이전을 한다고 하는데 뭐, 정부에서 하는 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국과수라. 의외로 쉽게 놀이를 시작할 수 있겠네. 


“ 어떻게 계약하겠어요? 이만한 가게 자리 없어요.” 

“네, 계약하죠, 그런데 사장님? 저 뒤 창고는 제가 방으로 수리해서 써도 될까요?” 

“방으로? 여기서 먹고 자게?” 

“네, 형편이 어려워서요. “ 

“ 그렇게 하구려, 주인한텐 내가 말해 놓을 테니” 


Play 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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