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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Nov 24. 2021

소설: 신월동

-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은 한다. 그곳

- 3: 밥집 _1


“내 노래 한 자락 뽑아 볼까?’ 

“아이고, 우리 형님 오늘 또 딸내미 생각나나 보네” 

“무신, 문디가스나 생각도 아깝다” 

“아이고 또 독한 말 하시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거 소식 끊어진 게 벌써 5년이다. 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더니. 

박복한 년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갓 스물이 넘어 그 사람을 만났다. 경상도 시골 구석에서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낡디 낡은 가방을 꺼내 든다. 그래도 20년을 살았는데 가지고 갈 것이 고작 티셔츠 몇 장, 지난봄 장날에 얻어 입은 청치마 하나. 도둑이 들어 욕하고 갈 집이 이곳이다. 젠장 

버스를 타려면 족히 20분은 걸어가야 한다. 전생에 무슨 지은 죄가 그리 많아 날 이 산골에 숨겨 두셨는지. 절대자가 있다면 묻고 싶다. 왜 하필 나냐고 


“아이고 미선이 어디 가나?” 

“읍에 볼일이 있어서” 

정확히 1분에 한 번씩 덜컥거린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 본다. 오늘따라 물먹은 솜처럼 머리가 무겁다. 속은 왜 이리 울렁거리는 지. 국민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켰을 때 느낌이다. 


“미선이 이리 온나” 

“아부지 또 술?” 

“오늘 아부지 기분이 좋아 그런다.” 

“아부지 배고프다” 

“아이고 우리 미선이 배고프나? 이거 한 사발 쭉 들이켜 봐라” 

“내한테 막걸리 먹으라고?” 

“이게 말이다 묘약이다. 배도 부르고 노래도 나오고” 

묘약이란다. 기분 좋아 마시는데 아버지 눈은 울고 있다. 묘약이긴 묘약이네. 

너무 배가 고파 두 눈 질끈 감고 목으로 흘려보낸다.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5살 무렵 김 씨 할머니 잔칫집에서 먹던 홍어 한 점이 기억난다.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에 눈물을 왈칵 쏟았던. 

그런데 요놈은 조금 다르다. 끝 맛이 달큼하니 초점이 흐려진다. 웃음이 난다. 배가 고프지 않다. 

“아부지 내 한 사발 더 도” 

“ 우리 미선이 좋나?”

“히히, 배 안고프다” 


그때는 막걸리가 묘약인 줄 알았다. 울던 아부지도 웃고 배고프다 아우성치던 내 배도 조용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부지가 맞다. 

“세상 사 뭐 있노, 이리 내 새끼 얼굴 보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면 장땡이지” 


서울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 친구가 소개해 준 브라자 공장에 취직을 했다. 미싱을 다룰 줄 몰라 매일 청소하고 쪽 칼로 실밥 다듬고 꼬박 10시간을 앉아서 일을 했다. 


“미선 씨, 힘들죠?” 

“아니라예, 괜찮습니더.” 

“이거 한잔 마시고 일해요.” 


어찌 저런 우락부락한 얼굴에서 곱디고운 서울말이 줄줄 나오는지. 서울에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몰래 훔쳐 입은 실크 속옷처럼 간질거린다. 


‘김형식’ 참으로 개자식이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서울 생활 시작한 지 얼추 1년이 다 되어 갔을 때다. 

“오빠야? 내 속이 이상타.”

“왜? 어디 아파?”

“아니, 자꾸 어지럽고 체한 거처럼 울렁거리고” 

“미선아? 혹시?” 


내 배 안에서는 콩만 한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워, 미선아. 오빠가 어떻게든 너랑 이 아이 내 가족 지킬 거야” 

그렇게 콩만 하던 게 내 배를 터뜨릴 듯 부풀러 올랐다. 꼴에 지도 사람이라고 발로 툭툭 찬다. 

“알았다. 고만 차라” 

“미선 씨? 미선 씨? 집에 있어요?”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떨어진다. 발등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우리 미선이는 엄마 팔자 닮지 마라. 이래 박복한 팔자 물려줄까 제일 겁난다.” 

“엄마, 내는 절대로 엄마 팔자 안 닮을 거다. “ 


그날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내게 왔다. 

눈앞에서 배고프다 울어 재치는 저 아이가 내 딸년이란다. 젖이 퉁퉁 불어 통증이 목으로 올라온다. 멍하니 그저 우는 아이만 쳐다본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감당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어렸다. 


정신을 차린 것은 아마도 2개월쯤 지나 서다. 산 사람은 산다고 했던가? 그 사람 떠난 후 2개월간 기억은 없지만 이제 아이가 울 때는 젖을 물린다. 독하디 독한 게 사람이다. 곧 죽어 없어져 버릴 거 같았는데 살아진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기도 한다. 


애 아빠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문디자식, 뭐? 지킨다꼬? 누굴?” 


그 사람도 마음 편히 가지는 못했을 거다. 두 잡년이 이리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두 잡년이 내 아들 잡아먹었네, 이년아? “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늙은 노인네가 내 머리채를 잡고 처음으로 한 말이다. 

무정한 게 세월이라고 했던가?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랬듯 나 또한 이놈의 팔자 대물림 안 해주려고 이 악물고 살았다. 


“ 엄마? 엄마?”

“ 니 엄마 안 죽었다. 와? “ 

“ 나 만원만 줘”

“ 만원? 이 가스나 미쳤나?” 

“ 꼭 필요하단 말이야. 책도 사야 하고 “ 

“ 뭔 책? 공부도 안 하는 년이 책은 무신” 


입으로 욕을 쏟아내며 손은 허리춤 주머니 속 만원 한 장을 깨운다. 딸년이 나풀나풀 거리지만 학교는 꼬박꼬박 다닌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얼굴 하나는 내 속으로 낳았어도 참 잘 났다. 

그 사람 떠나고 딸년 얼굴에서 그 사람을 만난다. 


“ 오빠야? 우리 아가 벌써 고등학교 들어갔다. 시간 참 빠르지? 이래 자고 있는 얼굴 보면 참 좋다. 오빠야 얼굴도 보이고 딸년 얼굴도 보이고 해서” 


악착같이 일해서 조그마한 식당 하나 갖는 게 꿈이다. 그러면 딸년 시집가도 내 밥벌이는 하고 짐 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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