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안 Jan 03. 2022

소설: 신월동

-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은 한다. 그곳

- 3: 밥집 _2


2008년 어느 봄날. 딸년이 소식이 없다. 

“엄마, 내가 지금 어디를 좀 가거든. 그러니까 연락 못할 거야. 기다리지 마 “ 

“이년이 뭐라카노?” 

“잠시 외국에 가 있을 거 같아. 내가 도착해서 자리 잡으면 연락할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은희야? 은희야?” 


매정한 년.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죽었으면 소식이라도 있겠지 하고 기다린 게 벌써 5년이다. 몇 년 전인가? 전화 한 통 온 게 전무다. 


“엄마, 나, 은희”

“뭐라고? 누구라고? 우리 은희 맞나? 

“ 건강하지? “ 

“ 아이고 이년아. 니 시방 어데고?” 

“ 어, 외국이야. 엄마 모르는데. 잘 지내니까 걱정 말고 또 전화할게.” 

“ 아참, 엄마? “

“ 와?” 

“ 내가 통장에 돈 좀 보냈어. 보약이라도 하나 해 드셔” 

“ 은희야? 니 괜찮나?”

“ 엄마, 미안.. 내가 또 전화할게” 


서울로 도망 왔을 때 꼬박 반년이 지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 독한 년, 와? 느그 엄마 죽으면 전화하지?” 

“ 미안타. 엄마 목소리 들으면 다시 짐 보따리 챙겨 내려갈까 봐 그랬다. “ 

“ 아이고 독한 년, 누굴 닮아 저리 독하노? “ 


지금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온다. 

“ 아이고 독한 년 , 세상에 나보다 더 독한 년 “ 


딸년이 보낸 돈 보태 작은 식당 하나 장만했다. 그저 나 밥해 먹듯 밥해서 팔려고 

남편 앞세우고 딸년 소식도 모르는 년이 살아 보겠다고 장사하는 게 부끄러워 간판도 달지 않았다. 


“ 이모? 여기 밥 집 맞죠? “ 

“ 밥 집이지, 그럼 옷 집이가? “ 

“ 하하하, 이모 재미있으시네” 

“ 와 내가 니 이모고? “ 

“ 사장님, 밥 좀 주세요” 


머리는 부스스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누구 집 딸년인지 참으로 답이 안 나온다. 우리 은희보다는 몇 살 위로 보이는데. 가스나 베실 웃는 게 은희 같네. 


“와, 정말, 와, 이모? “ 

“ 다 묵었나?” 

“ 정말 맛있어요. 장난 아니다. “

“5천 원만 내라”

“ 이모. 죄송여. 이모라 불러도 돼요?” 

“ 그러던지 말던지 “ 

“ 언제 오픈하셨어요? “ 

“ 며칠 안됐다. 윗동네 사는데 가게 자리가 났다케서” 

“ 그럼 저 단골 1호 등록할게요 “ 

“ 밥 다 묵었으면 퍼뜩 가 일해라. “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 질끈 묶어 올린 머리카락, 곱상하게 생긴 얼굴 하며 딸년이랑 참으로 비슷하다. 내 딸년이다. 어디 가서 배 골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경우 없는 짓은 안 할 것이고. 

그런데 자꾸 악몽을 꾼다. 


“은희야? 안 된다. 안 된다. 돌아와라” 


‘몇 시고?’ 또다시 악몽이다. 동 틀려면 족히 3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냉장고를 열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오늘 밤은 왠지 묘약이 필요하다. 


‘뭐지? 세상에’

그가 건넨 안경을 쓰니 눈앞에 플라멩고 무대가 나타났다. 붉은 꽃을 머리에 단 무용수가 힘차게 발을 구르며 플라멩고를 춘다. 테이블엔 시원한 샹그리아 한잔이 놓여 있다, 안경태 버튼을 한번 누르니 사그리다 파밀리아 앞이다. 

‘젠장, 이게 뭐야? 어?” 


“어떠십니까? 아주 획기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의 시스템이 확산되면 한국 여행업계에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혁명 동지를. 하하하 수정할게요. 파트너를 찾는 것입니다.” 


‘툭’ 손등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젠장 벌어진 입에서 떨어진 침일까? 내 정신일까? 

서둘러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 본다. 


“시간은 이틀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됩니다.” 

“이틀입니다. 대표님” 


이틀이란 말과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시계를 쳐다본다. 그와 한나절은 이야기한 듯싶은데 고작 25분이라니. 냉수. 그래 냉수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자.


냉동실에 얼음 칸에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얼음 몇 조각이 말라가고 있다. 서둘러 그것에 물을 부어 두어 번 흔들어 목으로 넘긴다. 살짝 비릿한 맛이 돌기는 하지만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 

오전에 날려버린 스멀거림이 다시 올라온다. 이번엔 발끝부터. 


“이모? 나 막걸리 한 병만요” 

“ 이 가스나, 일은 안 하고 낮 술이가?” 

“ 에이 낮술은 아니지, 좀 있음 해 떨어지게 생겼는데.. “ 

“ 와? 벌건 대낮에?” 

“ 오랜만에 고민이란 게 생겼네.” 


새벽녘 빗방울 떨어지듯 막걸리 흔드는 소리가 경쾌하다. 

“ 이모? 안주는 돈 없는데.. “ 

“ 안다, 가스나야 “ 


“ 이모? 내 외상값이 얼마지? 오늘 막걸리까지 “ 

“ 가만 보자, 하도 많아가 , 267,000원이다. 고마 30만 원 주면 된다. “ 


한때는 구두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30만 원에 가슴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처럼 추락한다. 아니, 이미 5년 전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끝, 이곳으로. 



작가의 이전글 12월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