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오후 5시 10분 발행
처음으로 상용 타자기를 만든 크리스토퍼 숄스(Christopher Sholes)는 누구나 글을 빠르고 간편하게 종이에 남기는 방법을 찾다가 타자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타자기와 QWERTY 배열은 현대 키보드의 원형이 되었으며, 현재는 표준 영문배열로 남게 되었다. (US배열, ANSI - American National Standards Institute)
이 부분은 타자기와 키보드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키보드에도 타자기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예를 들어서 T.Y.P.E.W.R.I.T.E.R라는 영단어를 입력해 보자. 문자열 상단 한 줄로 전부 입력이 가능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단 하나의 가로줄에서 타자기라는 단어를 전부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아마 몰랐다면 꽤 흥미로울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타자기를 판매했던 영업 사원들은 이런 홍보 방법을 적극적으로 시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보면, 종이를 쓰는 타자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문서에 오타가 생기면 수정액으로 지우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존용 문서는 깨끗한 완성을 위해 다시 쓰는 일이 잦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CRT 모니터가 개발된 이후에 워드 프로세서(Word processor)로의 활용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타자기가 보편화되고 수십 년이 지나 익숙했던 편이라, 컴퓨터를 신비롭게 보던 대중들은 키보드에도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이 사용할 만큼 소형화가 진행된 컴퓨터의 첫 키보드는 타자기 레버(Lever)를 전기 스위치처럼 구현한 방식이 주로 쓰였다. 하지만 원형으로 여겨지는 제품은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신 타자기나 전보 키보드의 파츠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흔해서 어디부터 시작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현대 기계식 키보드(Mechanical Keyboard)의 원형은 그렇게 타자기에 가깝고 익숙하며 비슷한 자판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초기 키보드는 금속 접점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스위치(Switch)로 만든 만큼 문제는 있었다.
형광등을 켜는 전등 스위치의 수명을 알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1~10만회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면 5000회 수준으로 매우 낮은 내구성을 가진 스위치도 가끔 존재한다. 이는 금속 접점이 갖고 있는 한계점으로 알고 있다. 스위치는 판스프링의 내구성 문제로 눌리지 않으면 교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접점이 붙지 않아서 불이 정상적으로 켜지지 않고 깜빡거리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이를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키보드에 대입하면 채터링(Chattering)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채터링은 빠르고 정확한 입력이 필수인 컴퓨터 키보드에서 사용상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방식이 정전용량무접점(静電容量無接点) 키보드다. (*Capacitive keyboard)
정전용량 방식은 기계식과 다르게 접점이 없고, 키를 누를 때마다 증가하는 전기용량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입력 신뢰도가 매우 높다. 1980년대부터 존재하던 대부분의 정전용량 키보드 제조사는 사라졌으나, 현재는 리얼포스와 해피해킹 프로페셔널에서 주로 사용되는 토프레(東プレ, Topre)사의 정전용량무접점 방식이 가장 유명하다. 다만 일반 키보드보다 비교적 고가인 편이며, 중국에서 만들어진 유사품도 꽤 괜찮은 기계식 키보드와 가격을 비교하면 비싸게 느껴진다. 1980~1990년대에는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었으나, 기계식과 정전용량의 비싼 키보드 가격이 더 많은 보급에 영향을 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계식이든 정전용량이든 대부분의 키보드는 기판 위에 움직이는 구조물을 넣어서 만드는 만큼 기본 제작 비용을 줄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저렴한 가격에 공급된 제품이 멤브레인 키보드(Membrane keyboard)이다.
본래 멤브레인이란 얇은 막을 의미한다. 여기에 기판처럼 회로를 그리고, 멤브레인 시트를 겹쳐서 누를 때 신호가 이어지게끔 접점을 구성한다. 이렇게 만들면 각 키마다 스위치가 없어도 겹쳐진 멤브레인 접점이 스위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당시에는 동일하게 러버돔으로 작동하는 탄소접점 키보드가 함께 공급되었으나, 리모컨에서 주로 사용하던 탄소접점도 멤브레인의 저렴한 가격을 따라가진 못했다. 그러나 이 멤브레인 방식 때문에 키보드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멤브레인은 겹쳐진 시트의 접점이 눌리면서 회로가 이어지며 신호가 연결된다. 이 의미를 생각해 보자. 겹쳐진 시트를 누른다? 이것은 손 끝의 힘이 바닥을 향한다는 의미다. 덕분에 멤브레인 키보드로 자판을 시작한 많은 사용자들은 키보드를 바닥까지 꾹꾹 누르는 것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러한 사용 방법은 손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얇은 막으로 구성된 멤브레인 시트의 내구성이 오래 버티질 못하였고, 상하 운동을 도와주는 러버돔(Rubber dome)까지 찢어지는 결과로 발생한다. 다시 키보드 입력오류의 시대로 회귀한 것만 같았다.
1990년대에는 멤브레인 키보드가 가장 많이 보급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자 키보드 작업이 많은 프로그래밍 개발자나 글을 쓰는 작가들은 기계식 키보드로 다시 눈을 돌렸다. 멤브레인 키보드가 5천원 하던 시기에 기계식 키보드는 약 5~15만원으로 비싸긴 했어도 인기는 조금씩이지만 점차 늘어났다.
이 시대에는 일본의 ALPS, NMB, Futaba 등의 다양한 키보드 스위치가 이미 단종되거나 없어진 상황이었고, 독일 CHERRY사의 MX와 ML스위치만이 남아있었다. 이 시기에는 국내 키보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일본에서 리얼포스도 출시되며, 이어서 해피해킹프로가 발표되었다. 그래서 키보드 커뮤니티에서는 항상 기계식 키보드와 함께 좋은 키보드로 정전용량 키보드가 소개되곤 한다.
체리 MX스위치의 특허가 풀리자 중국에서는 카일, 오테뮤, 게이트론 등에서 유사스위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키보드 커뮤니티에서는 이전부터 커스텀 키보드가 주류로 성장하며, 필요한 스위치 수요는 한순간에 급증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키보드 사업자들이 체리 스위치 규격으로 중국 제조사에 특별한 사양으로 스위치를 주문하여 생산하게 되었다. 일명 특주 스위치의 탄생이었다.
특주 스위치는 통상적으로 유통되는 스위치와 다르게 재질과 세부 사항을 중국 제조사에 특별히 주문하여 스위치 하우징의 재질 구성, 스프링의 압력과 형상, 스템과 슬라이더 금형을 세세하게 의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다만 공장에서 제작되는 만큼 소량일수록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물론 그것을 상회할 정도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커스텀 키보드를 처음 접하는 사용자일수록 공장윤활의 신뢰도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현재는 특주 스위치와 유사 스위치의 구분은 매우 모호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판매자들 측에서는 체리의 짭퉁 스위치라는 오명보다 이것은 특별 주문 스위치라며 소비자들에게 각인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똑같이 중국 제조사에서 만들어지지만 특별한 요청과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진 스위치는 특주, 중국 제조사에서 통상적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MX규격의 스위치는 유사 스위치다. 그래서 모호함이 생겨버렸다. 그렇다고 특별 주문 유사축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독일의 체리 내에서도 스탠다드한 스위치(흑색축, 청색축, 갈색축, 적색축) 이외로 특주 스위치를 따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계식 스위치는 체리 MX스위치를 본떠서 만들었고, 특허가 풀리자 표준 규격으로 정해졌으니, 결국 현대 기계식 스위치의 원형처럼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체리사에서는 스위치 제조를 조금씩 중국으로 이전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체리 MX키보드는 독일, 체코, 슬로바키이아에서 만들지 않았고, 중국에서 제조하고 있었기에 예정된 수순이긴 했어도 매우 아쉬운 결정이었다.
한편 PC방 키보드와 보급형 기계식 키보드에 스위치를 공급하던 카일과 오테뮤 스위치에서 짧은 내구성 문제로 인식 오류가 쉽게 발생하자 새로운 방식의 키보드가 출시되었다. 적외선 센서를 활용한 광축이었다. (*Optical Keyboard)
물론 광축은 특별하게 새로운 스위치는 아니다. 키캡을 열어보면 기계식 키보드처럼 각 키마다 스위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하운동을 하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키보드 방수를 지원하는 핵심적인 역할은 각 키마다 기판 아래에 장착된 적외선 센서(Optical sensor)가 접점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도 무접점이라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센서가 스위치 역할을 하는 만큼 회로를 연결하고 인식하는 방식이니 엄격하게 말하면 접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광센서만의 특징으로 인식율이 대폭으로 개선되었으며, PC방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 문제도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저가의 기계식 키보드와 멤브레인을 대체하는 새로운 키보드로 주목받았고, 출시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문제는 PC방 중심으로 너무 많이 보급된 탓에 PC방에서나 쓰는 싸구려 키보드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린 것이다. 보급형이라는 이미지가 나쁘게 인식되는 시대상과 더불어, 좋은 방식의 키보드임에도 일반 사용자들에게 외면받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멤브레인 방식의 러버돔 키보드를 새로운 플런저 키보드가 나타났다며 리브랜딩을 시도한 끝에 소비자들에게 버림받은 상황과도 흡사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E스포츠의 성장으로 특별한 방식의 키보드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바로 자석축(Magnetic Switch Keyboard)의 등장이었다.
자석축은 자기장을 활용한 홀 이펙트(Hall Effect)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정전계를 이용한 것이 정전용량 키보드라면, 정자계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석축 키보드다. 정전계와 정자계는 비슷하게 대응되는 유사한 면이 많은 이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석축 키보드나 스위치에 붙는 HE는 단순히 멋이 아니라, 해당 방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명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참고로 기계식에서 MX는 체리의 M7, M8, M9 다음 스위치로 개발되어 로마자로 10번째 'X'를 뜻하기도 한다.
자석축 키보드의 큰 장점이라면 자석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정밀한 구분에 있었고, 홀 센서는 이를 매우 세밀하게 감지했다. 이를 활용한 기능이 바로 그 유명한 레피드 트리거(Rapid Trigger)이다.
레피드 트리거는 사용자가 설정한 입력지점에서 키가 인식되기 때문에, 이론상 1mm 이하의 움직임에도 키보드 조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민감한 탓에 일반적인 IO기기보다 뛰어난 컨트롤러 프로그래밍이 필요했다. 추가로 USB 포트 Hi-Speed 사양의 8000[Hz] 폴링레이트(Polling Rate)와 결합하여, 매우 고스펙의 키보드로 주목받았다. 이 시장을 주도했던 것은 아무래도 유저층과 인기가 두터운 우팅(Wooting) 키보드이다. 다만, 보급형 자석축 키보드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잦은 인식 오류나 민감한 오차 보정으로 입력 문제가 생기기도 해서, 설정과 조작 편의성이 높은 제품군으로 사용자가 몰리는 편이다. 특히 자석은 온도나 외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라, 사용성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용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8K 인식은 일반적인 1000Hz 제품군에 비해서 CPU 자원을 어느 정도 잡아먹다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자석축의 민감함과 예민함에 견디지 못한 일부 사용자는 다시 기계식으로 돌아가거나, 정전용량 키보드에서 레피드 트리거 기능을 사용하기도 한다.
추가적으로 가끔씩 언급되는 프로젝션(Projection) 키보드가 있다.
초기에는 PDA나 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PC에서 사용하는 가상 키보드 개념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유튜버나 얼리어덥터들이 리뷰하는 특이한 물건쯤으로 취부되기도 한다. 바닥에 광학적으로 가상의 키보드를 출력한다는 개념은 키보드를 사용하는 손의 움직임이 오히려 빛을 출력하는 빔프로젝션에 방해가 되는 만큼, 처음부터 한계점이 명확했다. 이는 일반 키보드에 비해서 낮은 타자 속도와 나쁜 인식율이라는 편견이 생겨버려서, 책상 바닥을 키보드로 사용할 수는 있으나 편리하지 않은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프로젝션과 키보드의 결합은 다른 결과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빔프로젝트의 광학 이펙트를 키보드에 접목시킨 화려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박물관이나 각종 예술품 전시물에 따로 버튼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관람자가 벽이나 바닥에 그려진 가상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당 정보를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 키보드처럼 빠른 입력이 필요하지 않은 버튼식이라면 이러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키보드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약 22년 전 미래학자들은 키보드의 멸종을 미리 예측했었다. 그래서 키보드 커뮤니티에서는 미리 필요한 키보드를 챙겨두자는 분위기가 갑작스레 생겨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Forrester Research의 부사장 겸 수석 분석가인 J.P. Gownder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Though in relative decline, keyboards won’t disappear any time soon.
결국 키보드 자판은 쇠퇴하지 않았다.
2026년이 가까워진 미래시대에 전체적인 키보드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으니...
키보드 취미란, 아무튼 재미있다.
- 작가 소개: 2004년 첫 기계식 키보드를 구입하고, 현재까지 다양한 키보드를 모으며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컴퓨터 주변기기 회사에 재직하며 연구개발부서를 만들고, 이후 키보드 전문 담당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퇴직 이후 키보드에 관련한 컨설턴트와 여러 키보드 리뷰 자문과 칼럼을 기고하였다. 현재는 루습히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서 활동하며, 장기간의 키보드 취미를 이어가고 있다. 목표하고 있는 키보드 박물관의 길은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