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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엽 Aug 05. 2016

'뫼르소'는 자신의 이야기에서조차 소외된다.

리뷰 : 이방인(알베르 카뮈 - 이정서 역) / 새움

20살 무렵 처음 읽었었던 까뮈의 ‘이방인’(김화영 역)
당시에는 의미를 해석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
기억나는 것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라는 인상적인 첫 문장과 그저 태양 때문에 총을 쐈다는 것 밖에는.
그렇게 잊었다가 새로운 번역본(이정서 역)을 얻게 되어 다시 읽은 ‘이방인’


어떤 이는 주인공 '뫼르소'의 파편화된 실재를 묘사하기 위해 모든 문장을 독립적인 ‘단문’으로 쓴 ‘까뮈’의 

천재적 발상에 감탄했으나 프랑스어를 모르는 내게는 그저.. 아..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 말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따라 유심히 읽어 들어가니,  

보인다. 
단문, 복문은 모르겠지만 이방인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이방인’은 1인칭 시점의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의지와 주관의 방향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오로지 주변 상황과 맥락으로 묘사된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뿐.


특히, ‘뫼르소’가 살인죄로 기소된 법정에서 그는 고립된 채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 그리고 또 다른 제 3 자인 재판관이 결정하는 그의 운명은 이 작품의 대표적 상징.

(살인보다는) 종교가 없다는 이유로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었으며,
(살인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에 자비를 베풀어줄 필요가 없고,
(그를 위협한) 아랍인에게 총을 쏜 것이 그저 눈을 찌를 듯이 태양빛에 반사되는 칼날 때문이었다고


주변 이야기의 모자이크 속에서 중심 이야기를 상상해야 하는 구성.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조차 소외된 ‘뫼르소’.

여기에 이야기의 가장 큰 '위반'이 숨겨져 있다. 

뫼르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건조하고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말 그랬다면 그에게는 교도소에서 나오는 대로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없었을 테고 구명을 위해 나선 친구들도, 이웃도, 카페 사장도 없었을 테고, 불리한 증언을 한 장례식장의 수위가 그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었을 터, 어쩌면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을 뿐, 우리가 그를 오해한 것은 뫼르소의 이야기이지만 철저하게 배제된 뫼르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것.


왜 제목이 ‘이방인’인지 알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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