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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엽 Feb 24. 2017

사피엔스

리뷰: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김영사(2015)

사피엔스는 저자, ‘유발 하라리’의 인류 역사(Big History)에 관한 방대한 지적 논의입니다.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문화연구에 입각한 실증적 관점이라면 사피엔스는 작가의 사유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가 바라본 인류 역사의 단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던(능력을 가진) 인지 혁명을 그 시작으로 농업혁명과 제국의 탄생, 과학혁명의 시기로 구분합니다.


인지 혁명.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닌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현생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 종의 

가장 독특한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 능력은 전설, 신화, 신, 종교와 함께 등장하게 되는데 작가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 역시 허구의 산물입니다.

거대한 공장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언뜻 생각하면 그 자체가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기업'이란 존재를 믿고 건설된 시설물이며 지금 내 손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다음 달의 월급을 믿는 사람들이죠.

‘월급’ 혹은 ‘돈’ 역시 허구의 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돈 100만 원이 그만큼의 재화 가치가 있다는 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질서이자 허구(물리적 실체가 없는)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허구’ 덕분에 인류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연대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뒤로 이어진 혁명적 식량 개발 방식인 ‘농업’은 수렵 채집민들을 정착시키는 한편 농업을 위한 대규모 협력 시스템, 국가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국가 역시 구성원들의 싸움을 중재하고 누구나의 안녕을 보장해줄 상상의 질서 체계이죠

하지만 작가는 농업으로 인해 자유로운 개인을 포기하고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현재에까지 노동에 시달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합니다.

그 후 상상의 질서 체계이자 연대 체계, 국가는 주변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제국은 기술의 전파와 동질성을 강화하는 반면, 다양한 문화 기반을 파괴하기도 하지요.


‘유발 하라리’가 말한 인지 혁명. 바로 상상의 것을 신뢰하고 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 

그는 인류가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상화할 수 있었을까? 에 대한 해석은 주지 않습니다만,

짐작컨대 어쩌면 이는 숫자 3의 발명과도 밀접할 것 같습니다.


너와 나, 즉 1과 2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이죠

그리고 그(혹은 그녀), 다시 말해 3.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숫자 3이란 해당 존재를 대상화할 수 있었던 깨달음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마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자신의 상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넘어, 잡고 싶은 물소라든지 두려운 천둥과 벼락을 지칭하며 사물을 대상화해 나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언어가 발명되고 사고의 체계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그리고 그 발전은 농업을 통해 미래의 보이지 않는 가치(생산물)를 확신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만 존재하던 ‘사고’에서 '개념(예를 들어 미래)'을 추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다음은 과학혁명의 시대, 현재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무지’를 인정하며 시작합니다.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의심하며 검증하는 절차가 바로 현대 과학의 방법론이지요.

과학의 힘은 자연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삶을 자연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만 과학은 제국의 신성한 교리로 받아들여져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자본주의는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고 빵을 만들어 팔아야 밀가루를 살 수 있다는 딜레마를 무너뜨리며 급속히 확장되었습니다. 즉 빵을 만들어 2배로 갚겠다는 무형의 신뢰를 통해 지금 당장 밀가루를 빌릴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과학혁명은 가족과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그 자리에 시장과 제국이 들어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개인이 되어라.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와 연대하고 상품과 연대하라고”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그들이 진출한 곳마다 다른 종을 멸종시키며 번성해 왔던

 ‘호모 사피엔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계와의 결합이 가속화될 인류를 과연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영원한 젊음과 생명의 창조(생명공학적이든 인공지능이든)를 눈앞에 둔 그들은 

이제 막 신이 될 차비를 마치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 인류는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데 더욱 나쁜 것은 

현재의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무책임하다고.


이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는 현재 우리 인류 역사의 가장 큰 공백은 

제국의 흥망, 사회구조의 변화, 기술의 발전 등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모든 것은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행복에 대한 정의조차 내려놓지 않은 상태이죠. 

방향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라고 할까요?


물론 ‘유발 하라리’ 역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질문이라고 합니다.

만일 행복이 호르몬의 분비에 의한 화학적 반응이라면,

생명 공학적으로 생체 시스템을 조절하면 되는 것인지.

행복이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삶의 의미적 관점이라면, 

그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이며 있다면 혹시 그 사회 구성원의 집단적 환상이 아닌지.

마지막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책: 무의미한 순간적인 감정)에서의 해탈이라면, 

과연 사람들이 번뇌를 벗어날 수 있는 진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사유와 그가 남긴 행복에 관한 질문.

결국 ‘사피엔스’는 앞으로 인류가 어떤 목적으로 달려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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