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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Sep 27. 2021

당신은 '간신'을 욕할 자격이 있습니까

숱하게 거쳐온 여러 조직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람 보는 눈은 대략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슷한 절대다수의 이목'을 확 잡아끄는 1%의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이 충신이든, 혹은 간신이든.


그런데 과연, 그 시선들은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거나, 조직에 매우 헌신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사내 여론이 어떨까. 이런 경우 보통은 긍정적 '시선'이 많을 것이다. 한편 '간신배'라고 욕먹는 자들 역시 시선을 끌기는 한다. 다만 이들의 시선은 '눈총'에 가깝다. '저 사람은 윗사람들에게 유난히 딸랑거린다'는 말을 들어가며, 다수에게 멸시받기도 한다. 대게 그들의 여론은 늘 비슷한 편이었다. 이런 견해들이 조직원 모두의 의견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내가 본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간신을 욕할 자격'이 과연 모두에게 있을까?


한 번은 동기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건너편 A 팀장은 윗 임원진에게 지나치게 아부를 떤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그 팀장님의 태도는 내가 봐도 매우 대단하긴 했다. 상무님이나 임원이 나타나면 절로 숙여지는 고개와 허리, 그리고 공손히 자리하고 있는 겹쳐진 두 손. 목소리의 톤부터 말투까지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모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그런 A 팀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은 역시나 짐작대로 꽤 많았다. 그가 '업무적 기량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편법을 쓴다'는 양 여기는 시선들이 쏟아졌다. '저런 팀장 밑에서는 배울 것도 하나 없어'와 같이 비아냥대는 말들도 제법 들었다. 나 역시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주변의 목소리들에 휘둘렸던 것이었을까? 혹은 나도 그들처럼 그저 '딸랑거리는 모습'이 달갑지 않아 보였던 걸까? 어찌되었든, 고백하자면 당시엔 그들이 조금 고깝게 보였던 게 맞다.


그런데 그런 얼마 안 가 내게 큰 시련이 찾아오고 만다. 


정기 인사발령에서 A 팀장이 내 직속 상사가 된 것이다. 

당시 인사권을 행사하신 건 국장님이었다. 생각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나름 의전부서에 있으면서 예쁨을 많이 받았다. 또, 국장님이 유난히 나를 잘 챙겨주려한다는 동료직원들의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헌데 왠걸, 나를 이런 팀장 밑으로 배치시키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온갖 원망 섞인 생각들과 하염없이 뿜어져 나오는 탄식에 발령 당일까지 괴로웠다. '보스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인가' 정말 많이 되뇌이던 중, 정식 발령 날짜가 도래했다.


그런데 A 팀장과 일하며 나는 얼마 안 가 내 태도를 매우 반성하게 됐다. 윗사람 눈치만 잘 살필 줄 알았던 A팀장에게서 예상치 못한 면들을 본 것이다. 그가 이끄는 우리 팀이 사내에서 제일 주목받는 팀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과 3개월 만이다. 윗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하는 A 팀장의 능력은 장기 프로젝트 선정 프레젠테이션에서 빛을 발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주야장천 찍어내던 일일/주간 보고서를 임원들이 가장 만족할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다듬고 완성해내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고작 대리급이던 나와 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일전에는 반려되기 일쑤였던 우리의 보고서는, A 팀장을 만난 뒤 통과율이 100% 에 가까워졌다. 보고서의 기본적인 작성 스킬은 물론, 세심한 워딩 하나하나까지…. 정말 끝장났다. 


물론 업무적으로 불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팀원들이 커버 가능한 수용범위를 초과하여 계속 일을 벌이는 팀장에게 불만이 더러 나왔다. 혹은 지나친 보고서 검열과 잔소리 등 팀 내에서도 당연히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다만, 이런 문제들은 과거의 선입견을 모두 깨부수고 난 뒤 나타났다. A 팀장이 별다른 능력 없이 아첨만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팀원 모두가 분명하게 깨닫자 이따금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원활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 


퇴근 후 갖는 동기들과의 술자리, 혹은 흡연장에서 어느새 나는 우리 팀장님을 비호하는 변호인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교만스러웠던 나인가.


우리에게 과연 간신을 분간하고 판단할 자격이 있었을까. 

고작 쥐꼬리만 한 견해로 동기들과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가볍게 판단했던 걸까. 

하물며 경험의 깊이가 확연히 다른 '임원들의 시선'에, 고작 '햇병아리 시절 반기'를 들어올렸으니 말이다.


나보다 나은 점이 더 많은 '간신'을 욕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그가 가진 것이 어떤 건지도 채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짓은 무책임하고 교만하다.


그걸 비로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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