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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05. 2021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

유튜브나 여러 미디어, SNS에서 '가스라이팅'에 대한 언급이 꽤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직/간접적으로 겪는 중이거나, 퍽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을 심리적으로 교묘하게 조종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킨 뒤 본인의 의사대로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매체들을 잘 살펴보니, 이 가스라이팅에 대해 가장 많이 연관 지어 소개되는 것은 '남녀 간의 문제'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세월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사실 가스라이팅은 어느 관계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비단 연인뿐만 아니다. 직장동료, 친구사이 등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어떤 회사의 임원 혹은 상사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실질적인 보상과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기약 없는 희망고문을 한다. 그들은 그렇게 파릇한 후배의 에너지를 착취하는 것이다. 또 친구관계에서 어떤 이는 "친구사이에 뭐 어때"라는 말 같지도 않은 명분으로 어려운 부탁을 서슴지 않고 건넨다. 혹은 무례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간질에 능숙한 자들 역시 끔찍한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요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서, 정말 악덕한 '사이코패스'나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교활한 행위를 반복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각 곳에서 그들의 행태를 마주하다 보니, 나름대로 대처법을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바로 '가스라이팅에 당하는 척' 해주는 것이다. 

대게 직장의 상사든, 학교의 선배든, 혹은 나를 이용하고자 하는 어느 누구든, 그들은 스스로 조종 능력이 있다는 것에 퍽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본인으로 하여금, 타인이 행동이나 마음에 큰 영향을 받게 될 때에 아마 가장 큰 희열을 맞이하는 듯하다. 나의 경우 싸움으로 해결하려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몇 번의 거듭된 전투 끝에 그들과는 싸움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는 나의 분노와 화 조차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그 어느 곳에서든 그들을 만나면, 그저 조종당하는 척하기로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공감해주거나 이끌려가는 듯 들어준 뒤 곧바로 흘려보낸다. 상사들의 끝없는 감언이설에도 결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를 챙겨주는 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속 편하다. 후에 남을 어떤 미련과 실망감 역시 이로 인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다. 피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그런 에너지는 보다 내실 있게 마음가짐을 가꾸는 데에 쓰기로 했다. 


이런 연습을 하다 보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방어막이 생긴다. 

내 바운더리는 점차 작아졌을지언정, 더욱 단단해졌다. 




'가스라이팅'은 참 복잡하다. '악의'를 가지고 본인의 이득을 위해 이 행위를 자행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선의'로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악의'가 전혀 없이 그저 본인의 행동이 타당하다고 믿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본인이 정의라고 여긴다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가스라이팅'은 특히 자행하는 자의 '애정결핍'이 극심하거나, '우월감'에 도취된 경우에도 많이 나타난다. 당하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이 극심해져 가스라이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스스로를 '선지자'라 착각하며 타인에게 폭력적인 가이드와 교육을 자행하기도 하니까. 이간질을 일삼는 어떤 이의 모략도 마찬가지다. 그게 연인이든, 같은 직장의 동료든, 친구사이든, 본인만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큰 사람이라면 보통 이런 행위들에 익숙하다. 


살아가며 모든 가스라이팅을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잘 도망치는 방법은 숙지하고 있어야겠다. 당했을 때의 피로감은 실로 말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관계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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