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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08. 2021

"당신들이 뭔데 우리 보고 MZ세대래?"

'MZ세대'라는 말이 모든 2030을 규정지으란 건 아니거든요.

촬영을 중간 정도 마치고, 잠시 동료들과 옥상으로 올라왔다. 바람을 쐬기 위해서다. 이곳 옥상에는 또 하나의 야외 계단이 있다. 이리로 올라가면 한 칸 더 위에 작은 공간이 나온다. 아래층 옥상에는 흡연구역이 있는데 이곳은 담배 연기 없이 쾌적하다. 그래서 나와 동기들은 여기를 매우 좋아했다.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커피에 찬 바람을 더해가며 정신을 부여잡고 있을 때쯤이었다. 아래쪽에서 젊은 친구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까 녹화에 참여한 손님들이었다.


본래 출연자와 제작진은 정규편성이 아니고서야 깊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더구나 저들은 오늘 촬영에만 초대된 일회성 출연 게스트였다. 아마 20대를 대표해 나왔을 것이다. 아래쪽에 도착한 그들을 내려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덜컥 빨대에 목젖을 찔렸다.  


아니! 왜 자꾸 MZ세대, MZ세대, 그래?
진짜 짜증 나게! 우리가 뭐, 죄다 똑같아?
매뉴얼도 만들지, 왜!

촬영은 순조로웠다. 20대 참여자인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 초반부터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곧장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그 매끄러운 답변에 대한 화답은 늘 이런 식이 었다. 


"MZ세대의 생각은 그렇군요."

"역시 요즘 MZ세대들은 저희와는 너무 다르네요." 

"MZ세대들과 일하려면 이런 걸 염두에 두어야겠어요!"


등의 말들이 촬영 내내 줄곧 그들에게 날아갔다. 지금 옥상에서 'MZ세대'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자 이내 괜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앞쪽 난간에서 점점 멀어져 뒤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려왔다. 


가만 보니, 우리 스태프들과 수일간 고민해서 던진 질문과 멘트들이 그들에게는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요즘은 'MZ세대'라는 말이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본래는 1980~200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러 미디어와 출판시장 등 다양한 곳에서 이 'MZ세대'를 규정짓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을 마치 매뉴얼을 만들 듯 틀 안쪽에 설정해버린 것이다. 


빨대에 찔린 목젖이 꽤 아팠지만, 채 신음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조용히 한편에 대기했다.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머리를 쿵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스태프들과 그렇게 사전 논의하던 모든 것들은 다 뻘짓이었다. 사실 그들은 규정당하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MZ세대인데, 우리가 그들의 특징을 캐내고 있었으니 오죽 짜증이 났겠나 싶었다. 이런 글 조차 그들을 규정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상사 수많은 인간군상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찌 태어난 시기만으로 젊은 세대를 규정 내지, 한정지을 수 있겠나. 우리의 불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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