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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12. 2021

혹시 당신도 '서울기피증'을 앓고 있나요?

내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서울'



나는 '서울기피증'이 있다. 24시간 휘황찬란한(코로나19 이전) 강남의 밤거리, 반짝반짝 큰 건물들과 넓은 한강공원, '수도'라는 메리트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진 '글로벌 도시 서울'이지만 내게는 아니다. 복잡스런 곳곳의 거리들도, 북적이는 대학가도, 늘 외로울 일 없는 8차선 도로의 꽉 들어찬 차들도, 그 모든 것이 결코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이곳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 긴 시간 동안 내 심신은 지쳤다. 내 스타일이 아닌 서울과 오래 연애하며 난 피폐해진 것이다.


때때로 먼 곳에서 오는 친구들이 서울 찬양 일색일 때가 있다. 거기에 굳이 반기를 들며 비판하거나 그들을 설득하려 한 적은 없다. 어차피 이것은, 말 그대로 성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외관적인 모습 외에도 '서울스타일'의 내적인 부분에까지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다. 한해, 두해,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더 서울과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의 나를 발견한다. 


서울이 밉거나 싫지는 않다. 오히려 고마운 편이다.

단지, 서울이 너무 잘나서 내가 따라가기 버거운 것이다.


'서울기피증'이 뭐길래

'서울기피증'은 단어로 유추할 수 있는 그대로의 의미다. 서울을 점점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 내 주변 지인들도 나와 꽤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그들과 나눈 대화로 미뤄보면 대략 '서울기피증'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가진다. 


1. 늘 만차에 북적이는 출·퇴근길에 심신이 지쳤다.

2. 평일이나 대낮에도 정체가 풀리지 않는 올림픽대로와 온갖 번화가의 거리들 위에서 때때로 숨이 막힌다.

3.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온갖 유행들을 따라가기 버겁다.

4. 이 인파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고요를 찾아 헤맨다.

5. 꺼지지 않는 불빛을 피해 잠시 눈을 감고 어둠 속에 있고 싶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울기피증'이라고 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극히 그(녀)를 벗어나 있을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어떤 이는 아예 영영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말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한편으로는 분명 좋은 마음도 있어서, 적당히- 이따금- 거리만 잘 유지한다면 우리 사이가 건강해질 것 같다는 게 스스로 내린 진단이다.


'서울기피증'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

그렇다면 이 '서울기피증'을 어떻게 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마냥 피할 수도 없는 서울이니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수도가 아니던가. 이곳엔 온갖 대기업의 본사는 물론, 청와대와 정부 기관들까지 즐비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으로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장소이긴 하다. 


내가 찾은 단순한 방법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그저 서울생활을 수용했다면 이제는 '서울과의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너무 가까워지거나 우리의 관계가 깊어진다 싶으면 나는 자연스레 잠시라도 서울을 멀리한다. 이밖에 서울기피증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참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1. 거주지는 서울 밖으로


나는 서울을 벗어났을 때 묘한 안락함을 맞이한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편안함이 느껴진다. 서울에 살 때 귀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다. 당시에는 집에 가도 내가 귀가를 한 건지, 여전히 바깥 길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창 바깥 풍경을 봐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 벗어난 것 같은 해방감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 


나는 어느 순간 '서울을 탈출하는 희열'을 맛보았고, 이제는 매일 그것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2. 업무 이외의 모든 시간들은 웬만하면 서울 바깥에서 보내기


예전에는 필연적으로 서울에서 해결하던 것들이 있다. 일 이외의 제반 모든 사항들이 그렇다. 은행업무든, 병원이든, 친구들과의 약속이든, 전부 반차를 쓰거나 퇴근 직후 서울 모처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지인들과의 식사도 웬만하면 서울 바깥이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거의 약속 자체를 집 근처 혹은 교외로 잡는다. 은행업무나 개인적인 일 역시 오전 반차를 사용하고 집 근처에서 진행한다. 이후 가볍게 커피 한잔을 하고 여유 있게 다시 서울(회사)을 다녀온다. 혹은 아예 오후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하기도 한다. 


번거로운 일들도 서울 바깥에서 하면 왜인지 더 편하다. 조금도 조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3. 여행


대형 프로젝트나 줄이은 미팅으로 인해 서울에 장기간 상주하고 나면, 나는 반드시 여행을 간다. 아예 동떨어진 곳에서 캠핑을 하든, 낚시를 하든, 염소를 치든, 잠시 서울을 잊고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그것이 가장 큰 위로다. 이따금 찾는 시골의 지인들은 내게 큰 평화를 가져다준다. 푹신한 침대와 배게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가까운 사람과의 별 의미 없는 대화다. 하루 종일 분주하게 오로지 '식사 준비만' 하는 나날들이 좋다. 내게 휴식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떤 관계든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말을 늘 들어왔다. 

특히 회사에서 자주 그랬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두발 딛고 서 있는 장소나 도시, 혹은 취미마저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는 저마다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그 모든 일에 능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서울기피증이 있지만, 한편으론 서울을 애정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서울을 너무 아낀 나머지, 적당히 스스로 멀어지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서울을 잠시 떠나 있는 밤, 서울을 그리며 적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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