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그러나 결코 아주 비싸지는 않은 멋들어진 음주법
나는 술을 좋아한다. 잘 마시지도 못하고 양도 많지 않지만, 술자리를 꽤 즐겨왔다. 그러다보니 근래에는 '술' 자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곤 비로소 혼자 술을 즐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물론, 요즘 시기적인 특성도 한몫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누군가와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야 새로운 사람들과는 술자리를 갖기 매우 힘들어진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시끌벅적한 술자리를 그리워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혼술을 시도해왔다.
처음엔 가장 단순한 '넷플릭스 + 치킨 + 맥주 조합'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드라마 '심야식당'에 빠져서 가까운 이자카야 등 술집을 다녀보기도 했다. 그런데 '혼술'을 할수록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먹는 술은 왜인지 어딘가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모두와 함께 즐기던 그 분위기도 없고, 혼자 멍하니 잔에 스스로 술을 거듭 채워 마신다는 것. 그건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렇게 사연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분위기도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처량하지 않게 혼술 하는 법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나는 5성 호텔에서의 술 몇 잔으로 치킨을 대신한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TV에 나오는 '바(BAR)' 내지 '호텔'에서의 위스키, 보드카 등은 그저 사치처럼 보였다. 가격대를 가늠도 못했었거니와, 소주/맥주에 치킨이나 뜯던 내가 저런 곳에서 무얼 먹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호텔에서의 술 한잔, 이것이 주는 '사치와 가치'는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것 같다는게 요즘 생각이다.
첫째, 그 어떤 혼술과 비교해보아도 가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집에서 치킨을 시킨 뒤 맥주를 곁들여도 요즘은 기본 3만 원 정도는 나온다. 한 번은 너무 기분을 내고 싶어서 양주나 와인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이럴 때에도 5만 원 정도는 족히 들었다. 호텔에서 마시는 맥주나 위스키 한두 잔의 경우 보통 1만 원 내외로 책정되어 꽤 즐겨도 3만 원 안팎이다. 퇴근 후 집으로 귀가하기 전 가볍게 즐기는 술한잔 정도는 1~2만원이면 충분했다.
둘째, 모종의 공연비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5성급의 호텔 라운지나 바(Bar)의 경우 늘 공연이 있다. 재즈부터 시작해서 밴드, 클래식 공연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분야의 음악을 라이브로 생생하게 들으니 마치 뉴욕이나 파리 어딘가에 놓인 기분도 든다. 가장 행복했던 추억 중 하나도 떠오른다. 나에게는 '맨해튼의 버드랜드(Birdland)'다. 그 때를 떠올리며 홀짝이는 술 한 모금은 정말 많은 감정을 선사해준다. 저 한시간 남짓의 공연에 집중하는 동안 술도 천천히 줄어든다. 평소 급하게 마시던 버릇이 여기서는 고쳐진다. 자리마다 자리한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구경하는 것도 퍽 재미있다.
셋째, 새로운 배움이 있다.
단순하게 술 이름이 적혀있는 메뉴판은 많이 봤다. 늘 마시던 소주와 맥주에 대해서도 숙지가 됐다. 그런데 호텔 '드링크 메뉴판'은 다르다. 두깨가 거의 책 한 권이다. 와인부터 위스키, 럼, 보드카 등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심지어 또 자세하다. 원산지는 물론 재료는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왜 유명한지, 기타 참 많은 내용들이 적혀있다. 뿐만 아니다. 서버 분들이 술을 세팅해주면서 한잔 한잔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 디테일한 설명을 곁들여준다. 얼음과 함께하면 더 좋은 술,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고 난 뒤 마시면 더 풍미가 깊어지는 술, 온갖 술에 대한 정보를 아주 친절하고 세세히 강의해주신다. 성인이 되고 나서 기쁘게 배우는 공부 중 하나다.
넷째, 모종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요즘도 자주 먹기는 하지만, 과거부터 나는 치킨이나 곱창 등을 엄청나게 즐겨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소화력도 딸리는 걸까. 점차 다음날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속도 더부룩하고 영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과식하지 않고 운동을 병행한다면 다르겠지만 그게 맘처럼 되던가. 그래서인지 먹고 난 뒤의 죄책감도 제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호텔에서의 음주에는 별다른 죄책감이 없다. '조금 더 건강하게 음주를 한다'는 자기 위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딱 요 정도로만 먹는 술과 가벼운 안주들은, 되려 기분도 좋고 다음날 역시 깔끔하다. 나이 들수록 더 적합한 음주법인 것 같다.
다섯째, 혼자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가장 적합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혼술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집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호텔은 조금 다르다. 생각보다 혼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곤 저마다 사색에 잠겨있거나 공연에 빠져있는 모습을 봤다.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저 조용히 술한잔 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는 큰 소음도 없다. 물론 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이따금씩은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적당하고 미미한 볼륨의 소음은 나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요즘도 혼술을 자주한다. 그렇다고해서, 늘 앞서 언급한 호텔이나 바(Bar)에만 가는 것도 아니다.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과 과자를 사들고 가볍게 마시는 일이 더 많다. 라면 하나 끓여서 소주 반병도 매우 즐긴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일 같은 맥주나 소주를 먹는 일상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했다. 다양한 주종 경험에서 큰 의미를 찾는다.
혼자 이마트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술을 고르고 골라 집에서 한잔씩 하는 여유도 좋다. 다만 역시 그만큼 비싸지는 술값과 나의 노동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모든 수고를 덜기 위해 나는 이따금 호텔로 간다. 책 한권 가득 쓰여진 온갖 술들에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오늘은 어떤 강의를 듣게 될까 두근두근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찾아오는 색다른 사색의 경험은 분명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