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이중적인 나로 인해 괴로워한다.
1.
이따금 일이나 모든 인간관계에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런데 또 인스타그램이나 SNS에는 그 사실을 업로드한다.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공유하는 일도 빈번하다. 나는 혼자 있고 싶은 걸까? 아니면 혼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걸까?
2.
연인이든, 친구사이든, 동료든, 힘든 일을 다 같이 겪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 버팀목이 되려 노력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염없이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겉으로 내색 않고 다잡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내 마음일까? 나는 외로운 걸까? 아니면 고독을 원하는 걸까?
3.
조직 내에서 늘 헌신하고 과도한 업무에 치이는 선배나 동료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고마운 마음도 크다. 그런데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매번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아서 울화통이 치밀 때가 있다. 왜 저렇게까지 해가며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고 사는 걸까. 이따금 답답함이 한도를 넘어간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들이 눈에 밟힌다. 내가 그들처럼 살고 싶은 건지, 혹은 다른 삶을 원하는 건지 헷갈린다.
4.
주변 사람들 모두 착해 빠진 것 같다. 그래서 '악역'은 내가 해야 하는 게 맞다. 때문에 늘 냉정한 판단을 자처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최대한 철저하게 차가움을 유지하여 결정하는 편이다. 그런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장 가까운 식구들이 나를 차갑게 바라볼 때면 흔들린다. 나는 냉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나는 차가운 사람일까? 아니면 애매하게 미지근하고 모호한 사람일까?
5.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옛날 본능에만 충실했던 어린 나이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오히려 이중적이 된 것 같다. 보고 싶은 것도 참고, 같이하고 싶은 것도 참고, 더 빠르게 가까워지고 싶지만 '절제'라는 명목 하에 거리를 둔다. 그 뜨거움이 너무 쉽게 식어버릴까 봐서. 서서히- 천천히- 진행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무한하지 않은데,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어야 할 여유가 있을까? 혼란하다.
6.
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빨리 나이 들고 싶었다. '책임감이 무겁다'고는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모습 조차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커서 무엇이든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과거에 끌려다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제는 나이를 더 먹으며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예상치 못한 것들이 닥쳐올지 예상할 수가 없어서다. 한 때 인생에서의 모든 변수를 즐긴다고 생각했던 내가, 변수를 최소화하고 싶어졌다.
7.
어째서 나이 들수록 어려운 것만 많아지는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 어린날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현재까지 스스로를 깎고, 또 깎아내 여기까지 '만들어진 나'가 되었다. 이런 나 자신을 버릴 순 없다. 다만, '그 옛날 그 무렵의 나'가 그리운 건 사실이다. 일과 사랑, 우정 등 그 모든 것들을 일궈내는데 여기까지 걸렸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나.
혹은 이 마저도 지금 내가 헷갈리는 걸까?
나는 지금껏 '깎아 흘려보낸 나'를 그리워하고 있나?
이제는 멀리 떠내려가 보이지도 않는 내 조각조각 하나하나가 아쉬운가?
신이 선택지를 준다고 하면, 그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