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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Feb 28. 2022

어머니가 아주 가끔 치킨을 시켜주셨던 이유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같은 그런 사연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외식이 정말 드문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직장을 다니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들의 하루 두 끼는 늘 집에서 이뤄졌다. 직장/학교에서 먹는 점심을 제외하고는 모든 끼니가 함께였다. 중학교 시절 급식이 처음 도입되기 전까지는 도시락도 갖고 다녔다. 뚜껑을 열면 새어 나오는 어머니의 뜨끈한 무국과 하얀 쌀밥의 온기가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투정을 정말 많이 부렸다. 같은 반 세영이네 부모님은 똑같이 맞벌이 부부였는데, 그 집은 정말 빈번하게 외식을 했다. 부러워서 한 두 번 조른 것이 아니다. 새로 나온 햄버거를 학교에서 나만 못 먹어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정말 며칠을 보챘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밥상을 차리실 뿐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주 가끔 치킨을 사주실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 시킬 수 있는 배달음식이라 치킨이 거의 유일했다'배달의 민족'이나 '쿠팡 이츠'같은 앱은커녕 휴대폰조차 없었던 '삐삐'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피자집 역시 당시에는 없었다. 그래서 배달을 시킨다면 선택지는 늘 3개뿐이었다. 1번 치킨, 2번 중국요리, 3번 족발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치킨을 먹었던 때가 '특별한 날'이었던가? 아니다. 생일도 아니었고, 손님이 찾아오시는 날도 아니었다. 그런 중요한 날들에도 늘 손수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혹시 아버지가 밥상을 고수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무엇이든 잘 드시는 분이다. 오히려 어머니가 반대하는 걸, 냉큼 몰래 사주시기도 했다. 이따금 퇴근길 양손에 검은색 치킨 봉다리와 콜라 1.5L를 들고 오시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그럴 때에도 어머니는 무조건 밥상을 차렸다. 치킨은 반찬처럼 여러 반찬들 사이에 놓여질 뿐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도대체 치킨을 시켜주던 기준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방으로 가 물어봤다. "옛날에 아주 가끔씩 치킨을 시켜주던 건 왜 그런 거예요? 내가 치킨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응, 내가 먹으려고 시킨 거야.

대답은 간결했다. 본인이 먹으려고 시키셨다는 것이다. 사실 묻기 전에는 내가 기억 못 하는 대단한 일들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혹시라도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마다 포상처럼 치킨을 사주셨던 걸까?'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니었다.


어머니는 드시던 찻잔을 내려놓으시며 "조금 덜 미안한 상이었지!"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스스로에게 포상을 주면 좋아해야지, 뭐가 또 미안해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답변하신다. "몰라! 자식들한테 밥 안 먹이면 좀 미안하잖아. 근데 가끔은 괜찮겠다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을 때. 그럴 때 사준 거야.", 강원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콕콕 귀에 박힌다.




그 옛날 '치킨 한 마리'는 나에게 퍽 큰 의미였다. 닭다리를 뜯을 때면 마치 생일이나 기념일이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이 내려주는 '포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나를 위한 상이 아니었다. 그건 부모님이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었다. 그마저도 닭다리 말고 퍽퍽살만 드시면서, 참 불편한 상을 스스로에게 수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종의 죄책감까지 안은 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닭다리를 뜯을 때마다 불현듯 놓쳤던 옛날 생각이 난다. 한 번은 운동장에서 동네 형들과 대판 싸우고 흙범벅으로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치킨을 먹었던 것 같다. 혼쭐도 많이 났다. 그런데 그 이후, 빨래를 돌린 뒤 팔다리에에 연고를 발라주며 치킨을 시켜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수화기를 들고 "양념치킨 한 마리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진짜 그러네.

그거 정말 나를 위한 포상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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